이견 팽팽한 플라스틱 협약, '유해물질 퇴출'로 돌파구 찾나

입력
2024.11.26 18:00
플라스틱 오염 종식 위한 INC5 협상 2일 차
생산 감축이 핵심이지만 산유국 반발 거세
HAC 등 "유해물질 단계적 퇴출 방안" 지지
전문가 "자율 규제 아닌 목록화 작업 필수"

"우리가 인체나 태아 안에 들어가기 원하지 않는 화학물질이 분명 있습니다. (협상을)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인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물질이나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에서 출발하는 겁니다."(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25일 기자회견 중)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라는 한뜻으로 모였지만, 각국 이해관계에 따라 이견이 팽팽한 국제 플라스틱 협상에서 '유해 화학물질 퇴출'이 협상의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정량적인 플라스틱 감산 목표를 당장 합의하기는 어렵지만 '유해물질부터 우선 퇴출하자'는 당위엔 국제 사회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겠냐는 복안이다.

한국 정부, '우려 물질 간주 방식' 의견 내

국제 플라스틱 협약 성안을 위한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5)의 부산 개막 이틀째인 26일,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우호국연합'(HAC) 67개국 장관은 '효과적이고 야심 찬 조약'을 재차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서 이들은 "문제가 있거나 (사용을) 피할 수 있는 플라스틱 제품, 우려 화학물질과 폴리머(플라스틱 원재료) 등에 대한 단계적 퇴출과 규제를 포함한 국제 기준과 조치를 촉구하는 다양한 INC 회원국들의 요청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어렵사리 '협상의 출발점'으로 채택된 17쪽짜리 '논페이퍼'(비공식문서) 내용과 맥락이 비슷하다.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INC 의장은 앞선 네 차례 협상 끝에 협약 초안이 77쪽으로 늘어나자, 빠른 협상을 위해 INC5를 앞두고 핵심만 담긴 절충안 성격의 논페이퍼를 내놨다. 이 중 3항이 '우려 화학물질 규제' 관련한 내용으로, 의장은 △관리 대상 플라스틱 제품의 초기 목록 △우려 화학물질 식별 기준 등을 해당 항목하에 정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도 이런 방식을 지지하며 적극 의견도 개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협약 부속서를 통해 불필요한 플라스틱과 우려 화학물질을 목록화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다"며 "다만 무엇을 '우려 물질'로 볼지 많은 의견이 있고, 전부 목록화하기도 어려우니 발암성, 잔류성, 생물농축성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먼저 정한 다음 그에 해당하면 우려 화학물질로 간주하자는 방식을 제안 중"이라고 밝혔다.

"플라스틱 화학물질 26%가 유해" 연구도

이러한 '단계적 퇴출' 접근 방식은 '일괄 생산 규제'에 대한 전략적 우회로로 분석된다. 이번 협약의 최대 관건은 '생산 규제'라는 견해가 많다. 재활용을 아무리 잘한다고 한들, 지금 추세면 206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12억3,100만 톤에 달해 현재(2021년·3억9,000만 톤)의 3배로 폭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스틱 감산은 곧 원료인 화석연료 감산을 뜻하기에, 자국 경제 문제가 직결된 러시아와 이란 등 산유국은 '생산 감축' 방향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인체와 환경에 유해한 물질부터라도 줄이자는 접근법은 반대할 명분이 떨어진다. 올해 3월 발표된 플라스트켐(Plastchem)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1만6,325종 중 4,219종(26%)이 유해했으나, 실제로 글로벌 규제 대상인 것은 6%에 불과했다.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번 협약에 유해 화학물질 규제가 포함돼야 한다는 점은 국내외 전문가들도 강조하는 대목이다. 김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은 "일상 속에서 플라스틱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어 협약에 강력하게 반영돼야 한다"면서 특히 '자율 규제'가 아닌 '규제 대상 물질·제품군 목록화' 작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에이릭 린데뷔에르그 세계자연기금(WWF) 플라스틱 정책 책임자는 "폴리머나 유해물질, 반드시 필요하지 않지만 오염을 일으키는 플라스틱처럼 가장 문제적인 것부터 규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