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4시 센트럴 동물메디컬센터원장이자 ‘24시간 고양이 육아 대백과’ 저자인 김효진 수의사입니다. 아직 어린 고양이를 키우시는 집사님이 사연을 보내주셨네요. 고양이를 처음 키우다 보면 사람과는 많이 다른 모습에 행동 하나하나에 걱정이 되곤 하는데요. 오늘 사연의 집사님은 고양이를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듯 엉덩이를 끄는 모습에 걱정이 되셔서 사연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고양이는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요?
고양이가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먼저 뒷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할 분들 많을 텐데요. 고양이가 날렵한 동물이기는 하지만, 점프나 착지 과정에서 다리를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리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림핑 신드롬(Limping Syndrome)1이 어린 고양이에서 가끔 관찰되기도 합니다.
만약 고양이가 백신 후 1,2주 뒤에 이런 증상을 호소한다면 이 경우를 가장 먼저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림핑 신드롬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되지만, 병원을 찾아 정말 림핑 신드롬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더 안전하겠죠?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실 뒷다리 자체의 문제보다는 다른 곳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왜냐하면 다리에 문제가 있는 경우 보통 문제가 있는 다리를 절거나 드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고양이는 아픔을 잘 감추는 동물이기 때문에 아프다고 다리를 절기 보다 행동을 줄이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꽤 심각한 관절염이 있는 고양이이지만 집사가 보았을 때에는 예전보다 높은 곳에 덜 올라가거나 점프를 잘 하지 않는 정도의 증상만 보이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오히려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신경계 문제와 관련된 ‘마비’ 증상이나 고양이에서 가끔 발생하는 ‘혈전’ 문제가 원인인 경우가 더 흔합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허리를 다쳤을 때 하반신 마비가 되는 경우와 같이 신경이 손상되었을 경우 손상 부위 아래로 마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즉, 고양이의 척추나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다리를 못 쓸 수 있는데요. 뛰어놀다가 허리를 다치는 경우, 또 어린 연령이라면 고양이 전염성 복막염(Feline Infectious Peritonitis ∙ FIP) 등과 같이 뇌척수에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질환 등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다만 많은 신경계 질환에서 증상이 발현된 이후 점진적으로 증상이 심화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본 사연의 경우가 꼭 이런 심각한 경우인지는 확실하진 않습니다. 일단 아이가 다리를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신경계 질환에 대한 감별을 해 보는 걸 권합니다.
한편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고양이의 대표적인 심장병인 비후성 심근병증(Hypertrophic cardiomyopathy ∙ HCM)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심장 내 혈전이 발생하기 쉽고, 이 혈전이 다리로 내려가는 동맥을 막는 경우 해당 다리에 혈액이 차단되면서 마비 증상이 발현될 수 있습니다. 어린 연령에 심장병이 생길까 싶지만, 비후성 심근병증의 경우 유전적으로 발생하기 쉽고 때문에 상당히 어린 연령에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통증이 상당하고, 다리를 만져보면 차갑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또한 관찰됩니다.
한편 다리를 못 쓰는 것 같아 보이는 모습이 단순히 엉덩이를 끌기 때문에 보여지는 자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양이는 아쉽게도 손으로 엉덩이를 긁을 수 없기 때문에 엉덩이가 불편하거나 가려우면 엉덩이를 바닥에 끌어서 불편함을 해소하는데요. 이때 뒷다리를 뻗고 살짝 드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집사님께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여졌을 가능성도 제법 있습니다.
고양이의 이런 행동을 ‘이급후증’이라고 하는데, 이급후증은 엉덩이 부분에 불편함이 있는 다양한 경우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항문 주위에 있는 분비선인 항문낭에 염증이 생겼다거나, 알레르기 등으로 인해 항문 주위 피부가 가렵다거나, 소화기 기생충 같은 것에 감염되었다거나, 변비를 비롯한 배변, 배뇨에 문제가 있는 경우 등등에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연 속 고양이는 잠시 증상이 발생했다가 멀쩡히 회복하고, 일정 기간 이후 다시 증상이 발현하는 것으로 보아 이급후증의 가능성도 꽤 높아 보입니다.
이처럼 ‘고양이가 뒷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등 주저앉아 앞다리로만 엉덩이를 질질 끄는 모습’의 경우에는 다양한 이유와 그에 따른 여러 원인이 존재할 수 있는데요. 진단 범위를 좁히기 위해서 고양이의 행동을 영상으로 남겨서 수의사 선생님께 보여주는 걸 권해드릴게요.
오늘은 뒷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엉덩이를 끄는 고양이의 사연을 다루어 보았는데요. 원인에 따라 가벼운 질환부터 위중한 질환까지 다양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아이가 어리고 증상 외에는 건강한 상태이기 때문에 빨리 병원을 찾아 원인을 확인하고 관리하신다면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꼼꼼하게 돌봐주시는 만큼 고양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