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부, 알자지라 이어 '정권 비판' 진보 신문 하레츠에도 보복

입력
2024.11.25 20:30
"공무원들, '하레츠' 구독 말라" 보이콧 명령
발행인 '팔레스타인 자유 투사' 발언이 빌미
'네타냐후 비판' 언론에 재갈 물리기 논란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전쟁 수행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아랍권 대표 매체 알자지라를 퇴출시켰던 이스라엘 정부가 이번에는 자국 일간지 '하레츠'에 대해서도 보이콧에 나섰다. '정권 비판 언론에 대한 재갈 물리기' 논란이 제기된다. 이스라엘의 대표적 진보 매체인 하레츠는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립 정권 행보를 비판하는 기사를 써 온 탓에 '표적' 제재를 받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2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실로모 카르히 이스라엘 통신부 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각료회의에서 정부 기관 및 유관 단체 직원들에 대한 '하레츠 구독 중단' 지시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에 대한 정부 광고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카르히 장관은 "우리는 언론·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만, 국익에 반하는 선동에는 자금을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는 정부의 자유도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문제 삼은 건 최근 하레츠 발행인 아모스 쇼켄이 영국 런던에서 개최한 행사 도중 던진 발언이었다. 당시 쇼켄은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잔혹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강요하고 있다"며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두 번째 '나크바'(대재앙)"라고 말했다.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 전쟁을 벌여 팔레스타인 주민 70만 명을 내쫓은 사건을 일컫는 아랍어 표현이다.

특히 논란을 일으킨 건 이스라엘과 싸우는 상대를 "팔레스타인 '자유 투사'"라고 부른 대목이었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습과 봉쇄를 지적하는 취지였다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미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며칠 뒤 쇼켄은 '팔레스타인 자유 투사'라는 표현이 부적절했다고 인정하며 해당 발언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간 하레츠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극우 정권에는 이 발언이 확실한 빌미가 된 모양새다. 1919년 창간돼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일간 신문인 하레츠는 네타냐후 정부 고위 관리의 위법 행위와 권력 남용을 줄기차게 보도해 '찍힌 상태'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하레츠는 성명을 내고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있다"며 "하레츠는 (정부 비판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정부와 지도자가 승인한 메시지만 게재하는 정부 선전물로 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알자지라도 5월 퇴출… "비판 언론에 재갈" 우려

네타냐후 정권은 그간 여러 차례 비판 언론을 통제하려 하는 등 '언론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 방식을 비판하던 카타르 기반 뉴스네트워크 알자지라의 이스라엘 지국을 올해 5월 폐쇄하고 쫓아낸 게 대표적 사례다. 이를 위해 의회가 먼저 외국 언론의 취재·보도에 대한 정부의 제재를 허용하는 이른바 '알자지라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후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있는 알자지라 지국도 급습해 방송을 중단시키기까지 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 정부 규탄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비정부기구(NGO) 국제위기그룹(ICG)의 이스라엘 담당 분석가 마이라브 존스제인은 가디언에 "이스라엘이 모든 종류의 반대 의견 분쇄에 전념하는 권위주의 정권에 이끌려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며 "팔레스타인뿐 아니라 유대계 이스라엘인들도 (정부를) 비판할 수 있는 공간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용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