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미국·영국제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에 있는 표적을 타격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은 직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 브랸스크와 쿠르스크에 있는 전략 표적에 대량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브랸스크에서는 전략 탄약창이, 쿠르스크에서는 전구 지휘소가 파괴됐고, 러시아와 북한 고위 장성 사상자가 나왔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이에 격분한 러시아는 지난 21일 사상 최초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에 사용했다. 사거리 5,800㎞급 다탄두 핵미사일인 RS-26에 재래식 탄두를 달아 우크라이나 중부 드니프로의 군수산업단지를 강타한 것이다. 이곳에는 우크라이나군의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이 배치돼 있었지만, 구형 패트리엇은 마하 10 이상의 초고속으로 낙하하는 RS-26을 막을 수 없었고, 군수공장은 큰 피해를 입었다.
러시아가 발사한 RS-26은 정상 사거리의 6분의 1 정도인 약 1,000㎞를 비행했다. 이번 공격은 단거리탄도미사일로 타격 가능한 거리의 표적도 필요에 따라서는 ICBM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첫 사례이고, 앞으로도 유사 공격이 더 감행될 가능성이 높다. 비교적 속도가 느려 요격될 가능성이 높은 단거리탄도미사일 대신, 일반적인 요격 시스템으로는 대응 자체가 불가능한 ICBM을 사용해 공격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북한도 사거리 4,000~1만㎞급 탄도미사일을 이용해 하와이나 괌, 일본이 아닌 서울이나 부산을 공격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현재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 시스템으로는 마하 10 이상의 속도로 낙하하는 미사일 방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형 미사일 방어 시스템(KAMD)은 종말단계 방어에만 치중한,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MD 시스템이다. 탄도미사일은 발사 후 상승·중간·종말단계를 거쳐 표적을 공격하는데, 종말단계는 각 비행단계 중 속도가 가장 빠르고 미래 위치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요격이 가장 어렵다. 현재 운용 중인 패트리엇 PAC-2/3나 천궁-II 모두 가장 요격 난도가 높은 종말단계 하층방어 시스템이고, 곧 배치되는 L-SAM 역시 천궁-II보다 요격 고도가 약간 더 높은 종말단계 중층방어 장비다. 이런 요격체계들로는 북한이 이번 RS-26 공격 사례를 모방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로 공격해 올 경우 막아낼 방법이 없다.
우리 해군이 6척을 보유할 예정인 이지스함은 그러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유일한 자산이다. 이번에 해군에 인도된 정조대왕함은 SM-3·SM-6 미사일 운용 능력을 갖춰 중간·종말단계 요격 능력을 모두 갖출 예정이다. 문제는 ‘정치적인 고려’가 발목을 잡아 우리 이지스함들이 신형·구형 막론하고 핵심 능력이 ‘거세된’ 자산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3척이 배치된 세종대왕급 구축함은 도입 당시 미국·일본과 이지스 레이더·전투체계를 공동구매했지만, 유일하게 MD 능력을 삭제해 탄도미사일에 대한 대응 능력이 없다. 간혹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한미, 또는 한미일 연합 MD 훈련에서 한국 이지스함의 역할은 타국 이지스함을 엄호하거나 탄도미사일이 있는지 없는지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기만 하는 ‘참관자’ 정도에 불과하다. 탄도미사일 대응용 장비와 요격미사일이 없는 ‘깡통’이기 때문이다. 1척에 1조 원이 넘는 군함을 사면서 핵심 능력인 ‘이지스 BMD’ 장비를 사지 않은 것은 이것을 도입할 경우 미·일 MD와 엮이게 된다는 정치적 반대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탄도미사일 방어 능력 강화를 위해 추가 소요가 결정된 정조대왕급 3척 역시 정치적 반대 때문에 능력을 거세당했다. 공식적으로 정조대왕급은 SM-3와 SM-6 미사일을 모두 운용할 수 있어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보유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말장난’이다.
SM-3는 사거리 900~1,200㎞의 블록 1B 모델과 사거리 2,500㎞의 블록 IIA 모델이 존재한다. 한국이 도입하는 SM-3는 블록 1B 모델로 비행 속도가 마하 8.8에 불과하고 최저요격고도가 100㎞여서 한반도 환경에 그리 적합한 무기는 아니다. 신형 모델인 블록 IIA는 사거리와 속도가 블록 1B 대비 2배에 달하고, 최저요격고도가 33㎞까지 확대되어 중·장거리 미사일부터 단거리 미사일까지 거의 모든 유형의 탄도미사일 표적에 대응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블록 1B 모델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블록 IIA가 △블록 1B 대비 2배 가격 △미·일 공동개발 무기 △미국과 일본의 MD 시스템과 연동해 사용하는 협동교전무기라는 세 가지 ‘걸림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정치권에는 SM-3 블록 IIA를 도입해 미·일 주도 MD 네트워크에 참여할 경우, 중국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는 점, 그들이 우리나라만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의 탄도미사일 수백 기를 해안에 배치해놓고 우리를 직접 위협하고 있다는 점은 ‘상국’인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친중사대주의 인사들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러한 자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세종대왕급에 이어 정조대왕급까지 반쪽짜리 이지스함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심화되고, 신냉전 격화로 동북아시아에서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지금, 우리는 이지스함 성능 개량에 나서야 한다. 이제 막 전력화되고 있는 정조대왕급은 미 해군 전투함과의 협동교전(CEC)이 가능하도록 전투체계 소프트웨어를 개선하고, SM-3와 SM-6 모두 구형이 아닌 신형 요격탄을 구매해 장착해야 한다. 아예 깡통 이지스함인 세종대왕급은 전투체계와 레이더 구성요소를 신형으로 교체하고, 최신 BMD 시스템을 추가해 정조대왕급과 동급의 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최근 미국과 스페인은 기존 이지스함 성능 개량 및 수명 연장에 관한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알레이버크급 플라이트 II 함정들의 전투체계와 BMD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한편, 가장 노후화된 초기형 12척에 대해서도 수명 연장 및 소폭 개량 계획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스페인 역시 5척을 운용 중인 이지스 호위함에 20억 유로를 투입해 레이더와 전투체계를 현대화하고 BMD 능력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스페인의 이지스 호위함은 우리 해군 세종대왕함과 레이더는 같고 전투체계는 더 구형인 모델을 사용 중인데, 스페인은 이 군함의 1척당 개량비용으로 약 5,800억 원을 책정하고 있다. 스페인은 이지스 레이더와 전투체계 모두를 최신 사양으로 개량할 계획이다. 개량을 위한 장비 조달은 스페인 정부와 미 국방부 간의 대외군사판매(FMS)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고, 미 국방부는 자국 해군의 이지스 구축함 개량 사업을 위한 장비 조달 계약에 스페인 물량을 추가하는 형태로 장비 조달을 진행하게 된다. 즉,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같은 시기에 계약에 참여할 경우 물량 전체가 늘어나면서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세종대왕급 도입 사업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해군이 6척을 보유하게 될 이지스함들이 모두 신형 SM-3와 SM-6 운용 능력을 갖게 될 경우, 우리 군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북한 영내에서 선제적으로 격추할 수 있는 대단히 공세적이고 효율적인 MD 능력을 갖게 된다. 특히 이들이 미국의 MD 네트워크와 연결돼 연합자산으로 운용될 경우, 동북아시아 전역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 감시·정찰 자산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한국군 단독 자산으로 운용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통합방공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가령, 미국 감시·정찰자산과 연동된 SM-3 블록 IIA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포착된 직후 발사 대기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가 북한 미사일 발사 타이밍에 맞춰 요격탄을 발사하면 북한 미사일이 상승·중간 단계에 들어갔을 때 일찌감치 격추할 수 있다. 즉, 북한 미사일을 북한 영공에서 터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지금, 한국은 MD 자산으로서 가장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이지스함 자산을 더 이상 깡통으로 굴려서는 안 된다. 이번 정조대왕함 인수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이지스함을 진정한 ‘신의 방패’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용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