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삶 한글 배워 '시'로 표현" 칠곡할매 작품, 교과서 실린다

입력
2024.11.25 15:24
24면
내년 천재교과서 중1 국어 교과서에 4편
"학생들 효도하고 배려하는 마음 갖기를"

"처음 손잡던 그날 심장이 쿵덕거린다. 도둑질 핸는(했는) 거보다 더 쿵덕거린다. 벌벌 떨리고 부끄러버서 고개를 들도 몬(못)하고. 60년이 지나도 그때 생각이 난다."

경북 칠곡군이 운영하는 성인문해교실에서 한글을 배운 뒤 래퍼로 활동 중인 칠곡할매들이 이번엔 시화 작품을 교과서에 싣게 됐다.

칠곡군은 할머니 4명이 직접 지은 시와 그림이 내년 사용될 천재교과서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됐다고 25일 밝혔다. 주인공은 고 강금연·김두선 할머니와 이원순(87), 박월선(96) 할머니다. 천재교과서는 고 강금연·김두선 할머니의 '처음 손잡던 날', '도래꽃 마당'과 이원순·박월선 할머니의 '어무이', '이뿌고 귀하다' 등 4편의 시와 그림을 두 쪽에 걸쳐 싣고, "70여 년 동안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한글을 배우며 어느덧 자신의 삶까지 시로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22일 김재욱 칠곡군수와 김태희 칠곡군의원 등이 참석한 교과서 수록 축하 행사에서는 이원순 할머니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직접 지은 시 '어무이'를 낭송하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80이 너머도(넘어도) 어무이(어머니)가 조타(좋다). 나이가 드러도(들어도) 어무이가 보고 씨따(싶다). 어무이 카고(하고) 부르마(부르면) 아이고 오이야(오냐) 오이야 이래 방가따(방갑다)."

이 할머니는 "교과서 수록을 누구보다 기뻐할 언니들이 고인이 되거나 거동이 불편해 안타깝다"며 "어린 학생들이 할머니들의 시를 읽으며 부모님께 효도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할머니들은 일제 수탈과 6·25전쟁을 겪으며 지난한 삶을 살았다. 가난과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여자라는 이유로 정규 교육은 물론 한글조차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군이 2006년부터 운영한 성인문해교실에서 뒤늦게 한글을 깨쳤다. 군은 어르신들의 시를 모아 '시가 뭐고',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뭐', '작대기가 꼬꼬장 꼬꼬장해', '내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예뻐요' 등 시집도 발간했다.

칠곡군은 향후 할머니들의 작품을 모아 약목면 도시재생구역 정비에도 나설 계획이다. 김 군수는 "앞으로도 어르신들의 열정을 알리고 초고령화 시대 실버 문화가 주류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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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0306330003860)
칠곡= 김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