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조용필의 공연을 음성만 듣는다면 조금 과장을 보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관객들의 마음을 읽은 듯 그는 "내 나이 때 (이렇게 노래)할 수 있겠어요?"라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객석 곳곳에서 "오빠" "형님" 환호가 터져 나오자 "이 나이에 (오빠라 불리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며 미소를 지었다. 공연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열창에 중∙장년층 관객도 모두 청춘으로 돌아간 듯했다.
'가왕' 조용필이 2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정규 20집 발매 기념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젊은 감각의 신곡을 들고 팬들에게 돌아온 그가 공연의 서두를 장식한 곡은 "아시아의 젊은이여 /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같이 가리라"라고 노래하는 정규 7집 수록곡 '아시아의 불꽃'이었다.
자줏빛 재킷에 선글라스를 끼고 무대에 오른 조용필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 온 밴드 '위대한 탄생'의 두툼한 연주와 함께 '자존심' '물망초' '나는 너 좋아' '그대를 사랑해'를 쉼 없이 부르며 강렬한 록 사운드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지난해 연말 서울 콘서트에서 감기로 기량을 100% 발휘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만회하려는 듯 아낌없이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현란한 레이저 조명과 다채로운 영상,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불꽃 등 촘촘한 무대 연출도 볼거리를 더했다.
2018년 데뷔 50주년 전국 투어를 한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4년간 공연을 중단했던 그는 2022년부터 매년 팬들과 만나고 있다. 그는 "근래 들어 자주 뵙는 것 같아서 좋다"면서 "제가 보통 12월에 공연을 했는데 이번엔 11월에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인지 추운 게 싫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조용필은 이번 공연에서 관객과의 교감에 특히 신경을 쓴 듯했다. 당초 예정에 없었던 '난 아니야'와 '내가 어렸을 적엔'을 메들리로 부르면서는 "지난해 오랜만에 불렀더니 다시 한번 듣고 싶다는 연락이 계속 와서 그제, 어제 리허설을 하면서 다시 집어넣었다”고 했다. "같이 노래 부르는 게 우리에겐 힘이 된다, 운동하는 셈 치고 더 크게 불러 달라"면서 여느 때와 달리 '떼창'을 요청하며 수시로 객석을 향해 마이크를 건네기도 했다.
'창밖의 여자'를 부르기 전엔 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1979년에 동아방송 라디오국 부장에게 전화가 와서 1980년 1월 1일부터 나가는 드라마의 주제가를 불러 줬으면 좋겠다, 곡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창밖의 여자'를 전화로 듣고 적었어요. '촛불'은 1981년에 주차장에서 마주친 PD가 '('축복'이라는 드라마에 주제가를) 하나 써 줘야 돼' 해서 만든 곡입니다."
새 앨범 중에선 ‘그래도 돼'와 '찰나'를 불렀다. 앨범 발매 당시 마지막 앨범이 될 것임을 밝힌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정규 앨범은) 스무 번째로 아쉽게도 끝났지만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단발머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못찾겠다 꾀꼬리' '모나리자' 등으로 이어진 히트곡 퍼레이드는 '여행을 떠나요'로 정점을 찍은 뒤 잠시 암전을 거쳐 앙코르 무대 '추억 속의 재회' '꿈'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곡 '바운스'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가는 가왕을 향한 환호는, 그가 자취를 감춘 뒤에도 한동안 이어졌다. 조용필은 이날 포함 12월 1일까지 네 차례 서울 공연을 마친 뒤 다음 달 21일 대구, 28일 부산에서 투어를 이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