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후 총회인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제29차 당사국총회(COP29)가 24일(현지시간) 우여곡절 끝에 폐막했다. 매년 열리는 회의지만 올해는 향후 10년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돈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했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옹호하는 산유국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데다,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개막한 회의여서 시작부터 김이 빠졌다.
예정 폐막일을 이틀 넘겨 가까스로 합의문은 도출했지만 결국 '반쪽짜리 합의'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2035년까지 1조3,000억 달러(약 1,800조 원) 규모 기후대응 기금을 만든다"는 큰 목표는 확인했지만 '누가, 어떻게 모을지'가 불명확했다. 자국 경제 이익을 우선시한 미국 등 선진국들이 협상을 후퇴시킨 결과였다. 환경단체들은 "눈앞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좇다가 인류 전체가 공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UNFCCC 당사국 약 200개국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모여 지난 13일간 마라톤 협상을 이어간 끝에 이날 COP29 합의문을 도출했다. 가장 이목을 끈 합의 결과는 단연 '기후재정' 문제였다.
합의문에 따르면 각국은 2035년까지 연간 1조3,000억 달러를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신규 기후재원 조성 목표'(NCQG)를 승인했다. 선진국, 신흥국, 민간기업, 다자개발은행(MDB) 등 모든 당사자가 매년 이 금액을 개도국 기후위기 대응에 지급하기로 약속했다는 의미다. 2009년 출범한 글로벌 기후기금은 내년 갱신을 앞두고 있어 올해 회의의 핵심 쟁점이었다.
1조3,000억 달러 액수 자체는 일단 호평을 받았다. 영국 로이터통신은 "기후재정 전문가들이 요구했던 목표 액수와 일치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선진국 책임 부분이다. COP29는 전체 1조3,000억 달러 중 3,000억 달러(약 420조 원)를 선진국에 할당했는데, 이를 두고 선진국·개도국 입장차가 컸다. 선진국은 "2009년 COP15에서 선진국 몫으로 합의됐던 1,000억 달러 기후기금 규모보다 세 배 늘어난 수치"라며 "중요한 합의"(에드 밀리밴드 영국 에너지·탄소중립장관)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개도국들은 선진국 책임 규정이 지나치게 모호해 기금 모금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합의문이 3,000억 달러를 "선진국 '주도하'에 조달한다"고 서술하면서 중국 한국 등 신흥국이 참여할 여지를 열어뒀기 때문이다. 이는 '신흥국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선진국 논리에 따라 삽입된 문구지만, 개도국들은 이 같은 모호성이 국가 간 '책임 폭탄 돌리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3,000억 달러를 어떻게 모을 것인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점도 큰 논란거리다. "공공·민간 등 모든 재원을 인정한다"는 단서 조항 탓에 재원 확보 불확실성이 커졌다. 선진국 정부가 예산을 활용해 무상 증여하는 것 외에 △이자를 붙인 차관(대출) 지급 △민간 투자 및 MDB 지원 유도 등 간접적 조달 방식도 허용된다는 의미다. "선진국 정부에 퇴로를 열어준 것"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특히 대출 방식 허용 탓에 선진국이 개도국에 '고리 이자놀이'를 하던 기존 관행이 악화할 가능성도 크다. 그간 선진국들은 기존 1,000억 달러 기후기금 중 75%가량을 대출로 조달했고, 개도국의 악성 부채를 악화시켰다.
이 탓에 개도국들은 선진국 주도 공여 몫이 더 크거나, 책임을 명확히 할당해야 했다고 반발한다. 브라질 싱크탱크 에너지환경연구소(IEMA)의 히카르두 바이텔루 매니저는 2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기후변화 피해를 막기 부족한 규모"라며 "재원 출처 명확성이 부족해 모금 자체가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 바깥 영역도 부진했다.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발표한 국가가 많지 않았던 점이 대표적 사례다. 앞서 유럽 기후 싱크탱크 'E3G'는 지난 1일 "올해 COP29가 야심 찬 2035NDC 사전 발표 무대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년 2월 2035 NDC 제출 마감 기한을 앞두고 강도 높은 대응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실제 2035NDC를 기존 계획보다 높이겠다고 발표한 주요국 정부는 영국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밖에 없었다. 캐나다 칠레 멕시코 조지아 노르웨이 스위스와 유럽연합(EU)도 2035 상향안 제출을 예고했으나 구체적 수치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특히 EU는 당초 마감 기한 내에 27개 회원국 공동 2035NDC를 UNFCCC에 제출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내년 말까지 미뤄질 전망이라고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지난 12일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유럽에서) 기후변화가 경제 문제에 밀려 뒷전이 되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화석연료 퇴출 관련 합의도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 지난해 UAE COP28 합의문에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라는 문구가 사상 처음 명시됐는데, 올해는 후속 논의가 없었다. 당초 기후 단체들이 국가별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로드맵 작성 의무 신설 등을 요구했던 것과 배치된다.
이 같은 COP29 부진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 지난 11일 개막식에서부터 올해 의장국이자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 주요 인사들이 화석연료 이권을 공공연하게 옹호하며 회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회담 개최 6일 전 실시된 11·5 미국 대선이 '극단적 반(反)환경론자'인 트럼프 당선자 승리로 끝난 영향도 컸다. NYT는 지난 18일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화석연료 퇴출 논의를 방해하고 있다"며 "트럼프 재선이 사우디아라비아 관리들을 용기 있게 만들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COP29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9년간의 논의 끝에 유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세부 운영 지침이 마련된 것은 큰 진전이다. 국제사회는 2015년 COP21(파리기후협정)에서 탄소 시장 논의를 시작한 뒤 세부 지침을 승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COP29에서 합의안이 도출되면서 앞으로 유엔 관리 아래 글로벌 탄소배출권 거래가 비교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후환경 단체와 개도국은 향후 세계 각국의 적극적인 기금 조성 참여를 촉구했다. '화석연료비확산조약이니셔티브'의 전문가인 하지트 싱은 "COP29는 기후재난 취약 피해자들에게 '거짓 희망'을 제공한다"며 "기후 재정을 늘리고 선진국 책임을 명시하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