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블랙리스트' 만든 사직 전공의 "행위 인정하지만, 처벌 대상 아냐"

입력
2024.11.22 16:48
검찰 "개정 스토킹처벌법상 처벌 대상" 반박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나 의대생들의 신상정보를 퍼뜨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직 전공의가 첫 공판에서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법리적으로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이용제 판사는 22일 스토킹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20대 정모씨의 첫 공판을 열었다. 9월 20일 구속 이후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정씨의 재판을 보기 위해 개정 전부터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30개 좌석이 전부인 소법정엔 방청객 약 60명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이날 정씨 측 변호인은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혐의는 부인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명시한 피해자 중 상당수에 대한 개인정보 게시 행위는 1, 2회에 그쳤고, '공포감을 느꼈다'고 진술한 피해자도 일부인 점 등을 고려하면, 정씨 행위가 스토킹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단 이유다.

변호인은 "피해자 1,100명 중 13명 정도는 법원에 탄원서를 전달하며 '(정씨 행위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지 않고, 공포심을 느끼지도 않았다'고 했다"며 "스토킹처벌법은 개인의 의사결정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니, 피해자별로 범죄 성립 여부를 각각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뒤이어 진행된 보석 심문에서도 정씨 측은 이번 사건의 양태가 통상의 스토킹범죄와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씨는 재판이 열리기 하루 전인 지난 21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정씨 측은 이날 "명단을 올린 것 외에 피해자들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를 한 적이 없다"며 "동일한 행동을 할 이유도 없어 보석 인용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은 정씨의 행위는 개정 스토킹처벌법에 따른 처벌 대상이 맞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상대방 개인정보를 정보통신망을 통해 제3자에게 게시하는 것도 불특정 다수 대상 스토킹 범죄"라며 "이른바 '사이버 불링'으로, 정씨는 피해자들을 희롱하며 보복 의도를 드러냈다"고 반박했다.

발언 기회를 얻은 정씨는 "증거 기록이 7,000장에 달한다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구치소 반입이 불가능하고 피해자 이름을 다 기억하지도 못한다"며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보석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재판부는 기록 열람에 필요한 시간 등을 고려해 다음 달 13일 2차 재판을 열기로 했다.

사직 전공의인 정씨는 7월 의료계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은 의사와 의대생 신상정보를 담은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어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 '메디스태프' 및 텔레그램 등에 총 26회에 걸쳐 게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의정갈등으로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한 후 첫 구속 사례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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