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 '돌비시어터'. 평소 영화팬들이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모여드는 이 극장 앞이 21일(현지시간)에는 K팝 팬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CJ ENM의 글로벌 음악 시상식 '마마 어워즈(MAMA AWARDS)' 참석 가수들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 때문이었다.
이날 가수들이 식장에 입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가수 라이즈의 팬 마야(21)는 입구 안으로 살짝 보이는 라이즈의 모습에 눈물을 보이며 "표를 구하지 못해 아침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CJ ENM에 따르면 최고 220달러(약 30만 원)인 시상식 입장 티켓 약 3,000장은 지난달 판매 시작 당일 매진됐다.
이날 CJ ENM은 '마마 어워즈'를 시작한 지 25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에서 시상식을 열었다. K팝 시상식의 미국 본토 입성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장 치고는 비교적 작은 돌비시어터를 첫 개최지로 잡은 것은 10여 년 전만 해도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K팝이 이제는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까지 진출했다는 상징성을 극대화하려는 취지다. 박찬욱 CJ ENM 컨벤션사업부장은 "돌비시어터는 4년 전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한 곳"이라며 "미국에서의 첫 마마 어워즈를 같은 장소에서 개최한 것은 'K팝을 대표하는' 글로벌 시상식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마마 어워즈는 1999년 국내 최초 뮤직비디오 시상식인 '영상음악대상'으로 출발했다. 2009년 아시아 음악 시상식을 뜻하는 '마마'로 이름을 바꿨고, 2022년에는 아시아 시상식으로만 국한되지 않기 위해 아예 내포한 의미를 없애는 브랜드 변경을 단행했다.
마마는 일찌감치 해외를 바라봤다. K팝이 세계적 인기를 얻기 전인 2010년부터 한국을 벗어나 아시아 각지를 돌며 시상식을 열고 있다. 2017년 처음으로 베트남·일본·홍콩 3개국에서 릴레이 시상식을 열어 '전석 매진'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에는 K팝 시상식 최초로 이틀 동안 약 9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 도쿄돔에서 성공리에 개최하며 영향력을 입증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목표를 도장깨기하듯, 하나하나 이뤄 온 마마 어워즈에도 미국 개최는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고 한다. 가수 박진영은 이날 시상식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왜 그동안 미국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그만큼 어렵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K팝이 미국에서 널리 퍼지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아직 주류로는 올라가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K팝이 자국 음악 이상의 인기를 구가하는 아시아권과 달리 미국은 여전히 K팝이 비주류로 여겨지는 시장인 탓에, K팝 시상식 개최는 "무모하리만큼 앞서 나가는 일"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K팝 관련 이벤트를 더 많이 열 필요가 있다고 박진영은 말했다. 그는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미국의 일반 대중으로까지 K팝 팬층을 다양화하는 것"이라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이런 이벤트를 열어 노이즈(소음)를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인의 관심이 적다고 피할 게 아니라, 그럴수록 적극적으로 부딪혀야 K팝 인지도를 키우고 대중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임희윤 음악평론가는 "마마는 시상식이기도 하지만 가장 화려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응축한 K팝 최고의 쇼"라며 "미국이 K팝의 매력을 알아가는 데 이번 마마 어워즈 개최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마마 어워즈에서는 데뷔 30주년을 맞은 가수 박진영과 미국 대표 음악상인 그래미 어워즈 수상 경력의 팝스타 앤더슨 팩이 합동 공연을 펼쳤다. LA에 이어서 22일 오후 4시(한국시간) 열린 일본 오사카 시상식에는 최근 중독성 강한 노래 '아파트'로 전 세계 차트를 휩쓴 블랙핑크 로제와 브루노 마스가 무대를 빛냈다. 박 부장은 "마마 어워즈는 앞으로도 K팝 가수들에게 글로벌 소통 무대를 제공해 K팝 열풍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