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괴롭히던 '혐한' 어디로 갔을까…요즘 일본 극우가 활개치는 '이곳'

입력
2024.11.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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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 개선에 혐한 시위 줄었지만
극우, 아베 때부터 힘 키워 SNS 장악
과격 발언 일삼는 보수당도 원내 진출
과거사 알리는 양심 세력 노력도 지속

"혐한 시위를 극복했다."

일본 도쿄 코리아타운 상인들로 구성된 '신주쿠한국상인연합회'는 지난달 9일 도쿄 한 호텔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열고 지금의 성과를 자축했다. 코리아타운은 하루 평균 8만 명 넘는 인파가 찾을 정도로 요즘도 일본의 나들이 명소다. 틈만 나면 '일본에서 나가라'고 외친 혐한 시위대가 코리아타운을 활보했던 2010년대와 비교하면 180도 달라진 것이다.

혐한 시위 사라졌지만 겉모습일 뿐

지난 3월 정상 간 셔틀 외교 재개로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개선되며 도쿄 도심 속 혐한 시위대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주요 서점에 배치된 혐한 서적 코너도 사라졌다. 그러나 겉모습일 뿐이다. 일본 시민단체들은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는 오히려 늘고 있다"며 우려한다. 형태만 변화했을 뿐, 아직 일본 사회 곳곳에서 외국인에게 상처를 주는 차별·혐오는 여전하다.

극우 세력의 헤이트 스피치 주요 활동 무대는 거리에서 엑스(X)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바뀌었다. 2016년 6월 일본에서 '본국(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 이른바 헤이트스피치해소법이 시행되며 더 이상 거리에서는 활동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일본 연말 최대 음악제 'NHK 2024 홍백가합전'의 출연진 리스트가 공개된 직후, X에선 '혐한 홍백'이 인기 검색어가 됐다. 올해 트와이스, 르세라핌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이 4개 팀이나 출연하자 한국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재일동포가 많이 사는 도쿄 근교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인권·남녀공동기획실은 SNS 내 헤이트 스피치 확산을 경계하며 대책까지 세웠다. 가와사키시가 SNS 업체에 '헤이트 스피치 글 삭제'를 요청한 건 2022년 28건에서 지난해 19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삭제 요청 건수(지난달 기준)도 벌써 179건에 달한다.

SNS 내 헤이트 스피치 증가 이유는 일본 극우 세력의 장악력에 있다. 인터넷과 우익을 합친 '넷우익'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일본 SNS에는 혐한·인종차별 글이 쉼 없이 올라온다. 헤이트 스피치 활동을 이어오는 극우 세력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재임 시절(2006년 9월~2007년 9월, 2012년 12월~2020년 9월)을 거치며 힘을 키웠다. 극우 세력의 가치인 역사 수정주의가 아베 정권 들어 노골화·체계화한 탓이다.

학교서 '국가주의 강화' 교육... 극우 활개

일본은 2006년 11월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교육기본법을 개정했다. 60년 만의 법 개정으로, 학교 교육을 기존의 민주주의 함양 중심에서 '국가주의·배타주의 강화' 쪽으로 바꾼 조치였다. 가토 게이키 히토쓰바시대 대학원 사회학연구과 교수는 "역사 수정주의 세력의 힘이 세지면서 운동이 크게 전개됐고, 아베 정권은 일본의 가해 역사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애국심 교육을 활성화했다"며 "인터넷과 미디어를 통해 이런 인식이 확산되자 일본의 과거사 외면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줄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극우 세력은 이때부터 SNS를 통해 이념 확산에 집중했다. 반대로 진보 진영은 이 시기 정치권 압박과 고령화로 극우를 견제할 힘을 키우지 못했다. TV·라디오 등 기존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냈지만, 아베 정권의 언론 통제 강화로 진보 진영의 메시지 발신 창구가 줄며 힘이 약화했다.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해결공동행동 사무국장은 "아베 정권은 집권 자민당을 비판하는 미디어를 강하게 통제하고 극우 세력이 SNS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며 "반면에 진보 진영은 온라인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 활동가가 많아 온라인을 논의의 장으로 만드는 힘이 부족했다"고 짚었다.

극우 세력의 영향력은 제도권 정치에도 진입할 정도로 커졌다.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일본보수당은 10·27 총선(중의원 선거)을 통해 3석을 확보하며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햐쿠타 나오키 보수당 대표는 2017년 X에 "(한반도 위기 고조로) 전투 상태가 되면 재일(동포)은 적국 사람이 되기에 짓눌러 죽일 수 있다"고 적어 논란을 부른 인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 '과거사 문제'를 생각할 공간은 점차 줄고 있다. 일본 학생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등 조선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가토 교수는 "과거사나 한국 문제를 공부하면 오히려 '반일(反日)파'라고 비판받기에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일 역사 알아야 서로 이해" 목소리도

그러나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본 국민이 역사를 외면하지 않도록 과거사를 알리려는 양심 세력의 노력 역시 이어지고 있다. 가토 교수는 학생들과 같이 한일 역사책을 출간했다. 올해 서울이 단순히 놀고 즐기는 관광지가 아니라 한일 과거사와 관련된 곳이라는 점을 알리는 '대학생이 추천하는 서울 가이드'를 냈고, 2021년에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마주한 일본의 가해 역사에 대한 감정과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담은 '일한(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를 선보였다.

특히 '일한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는 지난 4월, 한국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건 슬픔이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간돼 큰 주목을 받았다. 가토 교수는 "K팝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들이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아이돌을 이해하려면 일한(한일) 역사를 알아야 한다"며 "양국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부터 역사를 제대로 보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한일 대학생으로 구성된 '한일청년파트너십'은 2020년부터 역사 문제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 나가고 있다. 20대 청년들이 양국 문화에 관심을 갖는 데 그치지 말고, 진정한 이웃 국가로 거듭날 수 있게 서로를 이해하자는 취지다.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 등이 이들이 꼽는 중요 주제다. 문정현(24) 한일청년파트너십 일본 측 대표는 "오히려 민감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서로 몰랐던 지식을 공유하게 돼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도쿄= 류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