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성공사례 없는 여대→공학 전환… 동덕여대는?

입력
2024.11.24 07:00
동덕여대, 남녀공학 논의 잠정 중단
학생 1,971명, 공학 전환 반대
극렬 반대 불구 전환 사례 없어
전 덕성여대 총장 "공감대 형성 중요"

동덕여대 측이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잠정 중단키로 21일 결정하면서, 반대하는 학생들과 대학본부 사이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이 일단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총학생회가 전날 개최한 학생 총회에 정족수(650여 명)의 3배에 가까운 1,973명이 참가하고 2명(기권)을 제외한 전원이 공학 전환에 반대를 표시하자, "찬성하는 학생도 있다"며 공학 전환을 강행하던 대학 본부도 한발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고비는 넘겼지만, 학교 측이 공학 전환 방침을 철회한 것이 아니라 잠정 중단한 것이므로 언제든지 입장을 바꾸고 갈등이 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과거 공학 전환을 추진했던 몇몇 여대 사례를 살펴보니, 학내 구성원의 반대가 크면 모두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1990년대 공학 전환 대학들, 격한 반대 없어

여대의 공학 전환이 성공한 사례는 대부분 1990년대로, 당시는 학내 격렬한 반대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1994년 효성여대는 지금의 대구가톨릭대로 통합됐는데, 공학 전환 자체에 반대하기보다는 학교 명칭을 '대구가톨릭대'로 정하는 데 대한 항의로 수업 거부가 벌어졌다. 결국 교명은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로 정해졌고, 2000년에 지금의 '대구가톨릭대'로 바뀌었다. 성심여대는 1995년 가톨릭대와 통합되면서 남녀공학이 됐는데, 이때도 교명을 가톨릭대로 정한다는 방침에 대한 학생들의 반대 시위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있었으나 통합 자체에는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1996년 상명대로 탈바꿈한 상명여대는 대표적인 공학 전환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당시 상명여대에서도 학생 일부가 서명운동을 하며 반대에 나섰고, 당시 학내에서 열린 KBS '열린음악회' 녹화 현장에 찾아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덕여대 사태와 같은 '강대강' 대치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던 김종희 상명학원 이사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재학생들이 교내에서 피켓을 들고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긴 했는데, 격렬한 시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제가 동문 100여 명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공학 전환에 대한 의사를 물었는데, 90%가 찬성했다"며 당시 졸업생들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2000년대 공학 전환 전무… 대부분 반대

반면 2000년대 들어서 남녀공학 전환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덕성여대는 2015년 이원복 당시 총장이 남녀공학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는 취임 후 각 학과 학생회장들이 참여한 확대운영위원회 등에서 공학 전환 논의를 진행했으나, 반대 여론이 나오며 학내가 술렁이자 공학 전환 의사를 접었다.

이 전 총장은 본보에 "갑자기 남녀공학 전환이 되겠냐는 반대론과 반발이 있었지만, 문제가 심각해지기 전 단계에서 철회했다"며 "아무리 대세가 남녀공학이더라도 여러 가지 조건을 검토해 본 결과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숙명여대는 같은 해 일반대학원에 남학생 입학 허용 계획을 세웠다가 재학생과 동문 등의 반발에 부딪혀 보류했다.

성신여대에선 지난 2018년 김호성 당시 총장이 남녀공학 전환을 공론화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 사이에선 반대 기류가 강했다. 당시 성신여대 학생자치기구인 중앙운영위원회(중운위)가 재학생과 휴학생, 졸업생 등 2,360명을 대상으로 남녀공학 실시에 대한 찬반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약 96%인 2,267명이 반대했다. 찬성 의견은 약 3%에 불과했다.

김 전 총장은 결국 남녀공학 전환 의사를 접었다. 그는 중운위와의 대화 과정에서 "현재는 시기상조"라며 "학생들의 의견이 최우선돼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54억 피해' 압박한 학교, '99% 찬성' 맞불 놓은 학생들

남녀공학 전환을 시도했다가 성공 또는 실패한 이전 사례에 비해 동덕여대 학생의 반발과 학교 측의 대응은 모두 극히 강경했다. 학생들은 학교 점거 시위를 이어가며 남녀공학 전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고, 학교 본부는 시위로 발생한 유·무형 피해 금액이 최대 54억 원에 이른다고 공개하며 학생들을 압박했다. 학생들의 시위 중단을 촉구하는 교직원과 교수들의 단체 성명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의 '잠정 중단' 결정을 이끌어낸 것은 역시 학생들의 압도적인 반대 의사였다. 총학생회는 지난 21일 학생총회를 소집해 '동덕여대 공학 전환' 안건을 표결했는데, 재학생(6,564명)의 약 30%인 1,973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 중 기권 2명을 제외한 1,971명이 남녀공학에 반대했다. 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구성원 공감대 중요… 남녀공학 쉬운 접근 말아야"

전문가들 사이에선 거액의 시위 피해 금액 공개 등으로 학생들을 압박해 온 동덕여대 측의 행보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대학 본부와 관련한 민주적 투쟁에 대해 대학이 학생을 이렇게까지 존중하지 않았던 적은 여태 없었다"며 "기업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것처럼 고등교육기관이 학생들의 의견 표현 방식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장은 "구성원들 사이에서 충분한 합의나 토의를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자녀를 여대에 보낸 학부모들의 의지도 있고, 여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뜻도 있기 때문에 남녀공학 전환은 쉽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여대 경쟁력, 인구구조 아닌 역할에서 찾아야

그간 공학 전환을 추진한 여대들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동덕여대도 공학 전환은 '학교 경쟁력 확보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아이디어'라는 입장을 줄곧 피력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장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권김현영 소장은 "동덕여대는 학교 재정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지원자 미달 사태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공학으로 전환을 얘기하는 것은 편의적인 발상"이라며 "현재 경쟁력이 없어서 어떤 문제가 있고, 앞으로 대학 지원이 어떻게 줄어들 것인지 등에 대한 근거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은아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대학은 각각의 설립 배경과 교육 커리큘럼, 역사를 이어 나가는 학문적 측면에서 경쟁력이 필요하다"며 "여대는 여성을 위한다기보다 이 사회의 평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지식 생산의 장으로서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한슬 기자
자료조사 성민호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