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유명한 문구다. 알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이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조직문화 또한 알처럼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구성원들은 조직 관행에 따라 외부 자극에 대응하면서 보호받지만, 그 안전함은 조직 발전에 필수적인 창의와 혁신을 저해하기도 한다.
민간 기업에 발맞춰 정부도 그동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조직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해왔고,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AI라는 기술사적 특이점 도래, 유연함과 실용적 사고로 무장한 MZ세대의 등장, 지방소멸과 같이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는 국가적 난제 등은 공직문화의 더 빠른, 질적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그간의 경험에서 조직문화 개선은 거창한 구호나 그럴듯한 계획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구성원들은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고, 조직은 직원들이 어떤 지점에서 문화적 거부감을 느끼는지 관심을 갖고 반응해야 한다. 알을 깨기 위해 병아리가 안에서 두드리면, 어미 닭도 같은 곳을 쪼아주듯이(줄탁동시, 啐啄同時), 직원들의 ‘줄’과 조직의 ‘탁’이 ‘동시’에 이뤄져 부리가 맞닿는 작은 성공들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 알을 깨는 지름길이다.
최근 행정안전부의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줄탁동시가 주목받고 있다.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직원들이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행바시(행안부를 바꾸는 시간)’, 젊은 주무관들이 명품 보고서 작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논의하는 ‘보고서 새싹반’ 등은 순식간에 모집이 마감될 정도로 호응이 뜨겁다.
조직 차원에서는 세대 간 갈등과 부서 간 칸막이 해소가 성과 창출의 핵심 요소라는 인식 아래, 새로운 소통과 토론 프로그램을 도입하였다. 간부가 익명으로 책을 추천하고 직원들이 참여하여 함께 책을 읽는 ‘책만사(책으로 만난 사이)’, 다양한 참석자가,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어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는 ‘다행포럼’ 등이 대표적이다.
일선 직원들뿐만 아니라 조직의 중추로서 성과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장들에 대한 역량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과장급 혁신역량 강화교육은 과장들이 AI·디지털 등 외부의 혁신 트렌드를 읽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혁신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조직문화라는 ‘알’은 그 어떤 ‘알’보다 단단하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혁신의 경험들이 쌓일 때, 그 ‘알’에 금이 가는 결정적인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 이후 공직은 분명 이전과 다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