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산하 기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사기 여파로 올해 사상 최대 적자가 예상되자 7,000억 원 규모의 자본 확충에 나선다. 하지만 이 수준으로는 HUG의 정상적인 보증 업무가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의 추가 혈세 투입이 불가피하다. 현 전세보증제도를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HUG는 7,000억 원 규모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할 예정이라고 21일 밝혔다. 신종자본증권은 기업이 자본을 확충할 때 발행하는 금융상품(영구채의 한 종류)이다. 일반 채권처럼 발행자가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구조라 회계상 부채로 분류되긴 하지만, 만기가 일반 채권보다 훨씬 길어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HUG가 발행하는 신종자본증권의 만기는 30년(5년 조기상환권·금리 4.1%)이다.
HUG가 처음으로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나선 건 올해 사상 최대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HUG는 지난해 3조8,958억 원의 당기순손실로 사상 최대 적자를 냈는데, 올해는 이를 웃도는 4조 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돌려준 전세금(대위변제)이 폭증한 영향이 크다. 1~10월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총액은 4조291억 원이다. 이미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기록(3조5,544억 원)을 가뿐히 넘어선 상황이다. 이런 추세면 올 연말 HUG가 떼인 전세금이 5조 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대규모 적자 여파로 HUG의 주 사업인 보증 여력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을 포함한 HUG의 보증상품 한도는 자기자본과 연동된다. 지금은 법 개정으로 전년도 자기자본의 90배까지 보증할 수 있지만, HUG는 위기 관리 차원에서 70배 이내로 관리 중이다.
연초 자본 확충으로 HUG의 자기자본은 6조4,000억 원에서 6조8,000억 원으로 늘었다. 이를 기준으로 현재 HUG의 보증 배수는 55배 수준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올해 당기순손실을 반영하면 자기자본은 3조 원 수준으로 내려앉고, 보증 배수 역시 125배로 치솟게 된다. 그런 상태를 유지하면 연말 결산이 발표되는 내년 3월 이후엔 단 한 건의 신규 보증도 내줄 수 없게 된다.
HUG가 이번에 7,000억 원 수준의 자본 확충을 해도 보증 배수는 100배 수준이라, 법이 정한 기준을 초과하게 된다. 특히 HUG는 신종자본증권을 더는 발행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정부의 추가 출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HUG가 정상 영업을 하려면 최소 2조 원 수준의 자본 확충이 필요한 만큼 정부의 추가 출자 규모는 1조3,000억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HUG 관계자는 "결산 뒤 부족함이 생기면 정부와 추가 출자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HUG는 최근 4년 동안 정부로부터 총 5조4,739억 원의 자본을 수혈받았고, 이 중 올해 집행된 금액만 4조7,000억 원에 이른다. 더구나 HUG의 대위변제액 회수 비율이 13% 남짓에 불과해 결국 세금 투입 없이는 HUG 곳간을 채울 수 없는 구조인 점도 문제다.
HUG 역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전세보증 기준인 이른바 '공시가 126%' 룰을 '공시가 112%'로 낮추는 방향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임대인들 반발이 거세 실제 시행까지 적잖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