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봉식 "송강호 선배께 고민 상담... 해답 얻었죠" (인터뷰)

입력
2024.11.21 12:41
연예계 대표 다작 배우 현봉식
드라마 '신의 구슬', 영화 '굿뉴스' 등 캐스팅
내년에도 열일 예고

이름은 몰라도 얼굴을 보면 모두가 아는 그 남자.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특출난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준 배우. 이제는 쟁쟁한 주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널리 알리고 있는 그는 '데뷔 11년 차' 현봉식이다.

일찌감치 중년의 역할들을 섭렵하며 '연예계 대표 노안 배우'라는 재밌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지만, 이제는 작품 속에서도 본인의 나이를 찾아가고 있다. 최근 종영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에서는 이준혁(서동재 역)의 후배 조병건 검사로 분해 열연했다.

1984년생인 현봉식을 실제로 만나면 의외로 귀여운(?) 면모에 놀라게 된다. 해맑은 미소에 조심성 많은 성격이 작품에서 보여준 과감하고 거친 모습들과는 상반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현봉식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제44회 영평상 남우조연상의 주인공이 됐다. 영화 '빅토리'에서 혜리의 아버지로 등장해 깊은 감동을 선사한 덕분이다. 수상 이후 SNS를 통해 "얼떨떨"이라는 짧은 소감을 밝힌 그는 누구보다 이 상의 의미와 감사함을 느끼고 있을 터다. 스스로 "연기에 미친놈"이라고 칭하는 현봉식을 만나 배우 인생에 대해 직접 들어봤다.

이준혁의 제안으로 참여한 '좋거나 나쁜 동재'

'좋거나 나쁜 동재'에서 서동재를 연기한 이준혁은 종영 후 취재진들과 만나 조병건 캐릭터가 너무 탐났다면서도 "(나라면) 봉식이만큼 못할 거 같다. 너무 잘 어울린다"라고 칭찬한 바 있다. 그는 처음부터 이 역할에 현봉식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이준혁과 동갑내기 친구인 현봉식은 "내가 주연으로 캐스팅된 영화가 있었다. 주연이 둘인데 배역이 안 구해지는 거다. 이준혁, 손석구 여러 배우한테 갔는데 확정이 안 돼서 딜레이 됐다. '범죄도시' 삼천만 파티 때 배우들이 모였는데, 준혁이가 온 거다. 준혁이가 영화 물망에 오른 걸 아니까 같이 못해서 아쉽다고 했다. 그때 나는 '좋거나 나쁜 동재'를 거절한 상태였다. 준혁이는 '동재'를 같이 하면 좋겠다더라. 영화랑 스케줄이 겹쳐서 거절한 거라 '다음 기회에 같이 작업하자' 인사하고 끝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데 '좋거나 나쁜 동재' 측에서 스케줄을 맞추겠다고 현봉식에게 연락을 했다. 그가 준비 중이던 작품은 첫 주연 영화였지만 너무 오래 기다려야 했고, 결국 드라마를 먼저 하기로 결심했다. 현봉식은 "현장에 갔는데 감독님이 너무 반겨주는 거다. 이 정도로 환영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환영을 해줬다. 즐겁게 촬영했다"고 밝혔다.

"준혁이가 촬영 시작하고 나서 '그때 (거절당해서) 서운했다' 하더라고요. 그 친구도 내향형인데 제작사에서 저를 데리고 오라고 했었나 봐요. 하하. 촬영장에서는 매번 저를 챙겨줬어요. 작가님과 소통하면서 배역이 해야 될 부분이나 긴 대사가 있다면 미리 얘기해 주기도 하고요. 매주 회차가 오픈 될 때마다 '잘했다'고 연락을 주더라고요. 쉬는 날이 안 맞아서 따로 만나긴 어려웠어요. 한 번 출연자들이랑 준혁이네 집에 모여 놀면서 밥 먹자고 했는데 촬영이 잡혀서 저만 못 갔던 기억이 나네요."


노안 배우?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

실제 나이보다 연로한 배역을 주로 맡은 탓에 의외로 어린 나이로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던 현봉식은 "이제 내 나이를 찾아가고 있다. '좋거나 나쁜 동재'도 이준혁보다 후배로 나온다. MZ 형사 역할도 있다. (손)석구 형보다 후배 형사다"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안 배우' 수식어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배우를 하지 않을 때도 나이를 많게 봤으니까 거부감은 없어요. 그냥 시키면 하는 거죠. 제가 언제 김윤석 선배나 유해진 선배랑 반말해가면서 연기할 수 있겠어요. 욕도 하고. 그분들과 연기를 하는 건 영광이죠. 너무 좋습니다. 조언도 해주고 연기도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죠. (연기할 때)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주니까요. 반대로 저도 현장에서 후배들과 배역을 소화해야 할 때 여유가 있으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해요."

데뷔한지 10년이 넘은 그는 지금껏 70여 작품에 출연하며 쉴 틈 없이 다작을 해왔다.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있지만 스스로 맞지 않는 옷이라 생각되면 입지 않는 철칙도 가지고 있다. "장태유 감독님의 드라마 '하이에나'에서는 재벌 2세 역할을 제안받았어요. 오디션을 봤더니 '재벌 해보지 않겠나. 색다를 거 같다' 하시더라고요. 서울말이 가능하냐고 물으셔서 '연습하면 만들 수 있는데 완벽한 구사는 불가하다' 했죠. 그런데 제가 납득이 안되서 표준어를 써야 한다면 다른 분을 캐스팅하시라고 했어요. 작품에 도움이 되고 싶지 제가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요. 건방지다고 느끼셨을 수도 있어요."

그 뒤에 제안을 받은 역할이 변호사였다고 회상한 현봉식은 "(제작진이) '사투리 써도 되는 역이니까 괜찮죠?' 해서 하게 됐는데 4부에 첫 등장을 했다. 그때 대본에 당구장 표시로 작가님이 '사투리를 씁니다'라고 써두셨더라"며 "영화 '비상선언' 촬영 당시 송강호 선배에게 '가끔 표준어 구사 요청이 온다'라고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선배가 '신경쓰지마. 표준어와 사투리를 이분법으로 구분할 게 아니라 배역의 말을 내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냐' 물으라고 하시더라. 그게 큰 도움이 됐다"라고 회상했다.

현봉식은 연기를 할 때 늘 '진짜라면 어떨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그의 연기엔 현실감이 깃들어 있다. 물론 연기를 하다 보면 열심히 찍고도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그럴 때면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아직 그에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서울의 봄'을 촬영했는데 통편집을 당했어요. 육군 사령관 역할인데 쿠데타 전화를 받고 전두광한테 가서 '우리 세력은 빠질 테니 자리를 달라'고 하는 역이었죠. 막상 영화를 보니 (그 장면을) 날려도 되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산'에서도 통편집이 됐는데 오프닝 역이었어요. 감독판 예고에 애니메이션 처리돼서 나옵니다."

지난 6일 공개된 디즈니 플러스 '강남 비-사이드'에서 활약한 현봉식은 JTBC '신의 구슬'과 tvN '컨피던스 맨 KR',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등에 캐스팅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도 한 그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대학로 일부 배우들의 롤모델이 저란 얘길 들었어요. 저는 제 일을 하는 거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해야 자기만의 길로 가죠. 저는 사투리를 고친 적도 없고 남들 말을 안 들은 게 결국 제 길이 됐잖아요. 주변에서 정말 걱정해서 해주는 소리긴 하지만 '이렇게 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라는 그런 말들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저는 그저 연기를 할 때 감독 말을 잘 듣는 게 최우선이라 생각해요."




유수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