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경업금지' 제약 딛고 잘파팝 아이돌로 새판 짤까

입력
2024.11.24 11:32
지난해 하이브에 보유 SM 주식 매각, '3년간 국내 프로듀싱 금지' 조항 합의
최근 신생 엔터사 A20엔터 설립→연습생 공개 및 프로듀서 복귀 예고
국내 아닌 싱가포르에 본사 둔 A20엔터, 경업금지 피할 방안 될까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하이브의 '경업금지 약정'이라는 제약 속 프로듀서 복귀를 알렸다. 3년간 국내에서 프로듀싱을 할 수 없다는 약정을 의식한 듯 K팝이 아닌 '잘파팝(Zalpha-Pop)'이라는 새로운 개념과 함께다. 과연 잘파팝은 이수만의 '경업금지' 족쇄를 풀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신생 엔터사 A20엔터테인먼트(이하 A20)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당시 이수만의 개인 회사인 블루밍 그레이스의 이름으로 A20의 상표가 출원 신청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A20를 통해 그가 엔터 사업에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이어졌다.

이수만이 경영권 분쟁 속 SM을 떠난지 2개월 만에 전해진 A20 설립 소식에 덩달아 조명을 받은 것은 그가 하이브와 맺은 '경업금지' 약정이었다. 해당 약정은 이수만이 앞서 자신이 보유한 SM 주식을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할 당시 합의된 것으로, 이수만이 향후 3년간 국내 프로듀싱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해당 약정에 따라 이수만은 오는 2026년 초까지 국내에서 음악 프로듀싱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당초 이수만이 A20를 통해 다시 엔터 사업을 재개한다 해도 곧바로 국내 엔터 사업에 복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하지만 이수만의 행보는 예상과 달랐다. A20는 지난달 공식 SNS를 통해 'A20 루키즈'라는 제목의 연습생 영상을 공개하며 신인 육성 및 데뷔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와 함께 해당 영상에서는 'Produced by S.M.Lee'라는 문구가 등장하며 이수만이 A20 프로듀서로 복귀한다는 사실을 공식화, 업계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공개된 'A20 루키즈' 연습생들의 화제성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이미 오랜 시간 SM을 이끌며 남다른 비주얼의 신인 아티스트들을 대거 발탁해왔던 이수만은 A20에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비주얼의 연습생들을 내세우며 건재한 안목을 증명했다. A20에 따르면 현재 연령과 성별에 따라 '루키즈 HTG' '루키즈 LTG' '루키즈 LTB' 세 그룹으로 나뉜 연습생들은 향후 성장에 따라 다른 그룹으로 전환되며 교육 기간 중 솔로 또는 유닛으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영상을 통해 공개된 연습생들이 대부분 중국인, 일본인으로 한국인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각에서는 해외 국적자들로 구성된 연습생을 꾸린 배경에 '경업금지' 조항이 있다고 바라봤다. 국내에서 K팝 그룹 프로듀싱이 불가한 만큼, 해외 시장을 겨냥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이 아니냐는 풀이다. 실제로 A20는 현재 싱가포르에 본사를, 미국·일본·중국에 지사를 뒀는데, 이 역시 '국내 프로듀싱 금지' 조항을 피하면서 해외 시장을 노린 신인 아이돌을 선보이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공개된 연습생들의 정체성에 대해 'K팝' 대신 '잘파 팝' 그룹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붙인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잘파'란 Z세대와 알파 세대를 합친 신조어로, K팝의 육성 시스템을 접목하되 'K팝 아이돌'을 표방하지 않고 글로벌 잘파 세대를 겨냥한 보다 넓은 의미의 아이돌 그룹을 론칭하며 '경업금지'의 제약을 극복하겠다는 뜻이 엿보이는 행보다. 업계에 따르면 이수만 측 역시 A20를 통한 그룹 론칭은 경업금지 조항을 위배하지 않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해외에 기반을 두고 다국적 연습생들로 구성된 '잘파 팝' 그룹으로 경업금지 조항의 제약을 피해가는 것이 '꼼수'가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만약 이들이 해외를 기반으로 데뷔한 이후 국내 시장에서도 함께 활동을 병행하게 된다면 이를 경업금지 조항 위배로 봐야할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 연습생 공개 단계인 만큼 A20와 'A20 루키즈'의 향방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시점이다. 앞서 이수만은 "이제 K팝은 K팝을 넘어 세계와 함께 하는 글로벌 뮤직으로 진화해야 한다. 세계가 함께 하는 음악의 세상은 기술과 음악의 접목이어야 하고, 그것의 목표는 지속가능한 세상에 대한 기여이어야 한다"라는 뜻을 밝혔던 바, '잘파 팝'이라는 새 카드를 꺼내든 그의 선택이 K팝의 새 지형을 여는 유의미한 시도가 되길 바라 본다.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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