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는 냉정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두 달 뒤 퇴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존재감은 참석하지도 않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보다 약했다. 유산을 계승할 후임자를 두지 못한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쓸쓸한 고별 무대였다.
G20 정상들이 18일(현지시간) 채택한 리우데자네이루 정상회의 공동 선언문에는 트럼프 당선자 재집권과 더불어 부상할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심이 반영됐다. 정상들은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규칙에 기반한 다자무역 시스템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관세 장벽을 쌓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당선자의 귀환에 동요할 무역 질서와 자국 피해 가능성을 걱정한 것이다.
새 리더를 자처하는 나라는 트럼프 당선자가 60%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한 중국이다. 지난주 페루 리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의 폐해를 부각하며 “모든 당사국이 발전하는 중국의 급행열차에 계속 탑승하기를 바라고 환영한다”고 언급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최빈국들에 대한 ‘일방적 개방’(unilateral opening) 정책 확대를 천명했다. 경제든 외교든 줄곧 합의 기반 주고받기를 중시한 중국이 ‘트럼프 2기 시대’를 맞아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반면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자의 대리인처럼 굴었다. 14일 미국 플로리다주(州) 팜비치 마러라고리조트에서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재선 뒤 트럼프 당선자를 만난 밀레이 대통령은 선언문에 구체적인 기후위기 대응 행동 촉구 문구를 넣으려는 다수 G20 정상들의 시도에 어깃장을 놨다. 기후위기론을 ‘사기’라 주장한다는 점에서 밀레이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자와 시각이 같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대주주인 미국의 도움을 받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수조 원)의 신규 대출을 확보한다는 게 밀레이의 목표”라고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G20 회의 직전 그간 불허해 온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의 대(對)러시아 사용을 우크라이나에 허용하고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아마존 열대 우림을 방문했다. 우크라이나 지원과 기후위기 대응에 반대해 온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하기 전에 자신의 흔적을 어떻게든 보존해 보려 안간힘을 쓴 것이다. 하지만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참가국 정상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각 등장한 뒤에야 비로소 그가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WSJ는 “바이든의 퇴장은 전후 1945년부터 이어진 규칙 기반 국제 질서와 이를 유지해 온 미국 리더십의 종언”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