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종말 온 줄"… WHO 기준 74배 '살인 스모그'에 숨 막히는 인도

입력
2024.11.19 18:04
'거대 가스실', "타지마할 90m 앞에서도 안 보여"
정부, 휴교령·건설 작업 중지, 외부활동 자제 권고

인도 북부 지역이 살인적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성 스모그가 하늘을 뒤덮으면서 가까운 거리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악 수준의 대기 오염 탓에 ‘세상의 종말이 온 것 같다’는 한탄마저 나올 지경이다.

19일 힌두스탄타임스와 AFP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인도 대기 수치는 연일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스위스 대기질 분석업체 아이큐에어(IQAir)가 집계한 인도 수도 뉴델리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18일 921㎍/㎥으로 치솟아 올해 들어 최악을 기록했다. 뉴델리의 한 관측소에서는 PM2.5 수준이 1,117㎍/㎥을 기록,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24시간 기준 권장 한도(15㎍/㎥)의 74배에 이르기도 했다.

19일에는 공기질 지수(AQI)가 515까지 치솟았다. 국제적으로 AQI가 300을 넘으면 ‘매우 유해한’ 수준을 넘어 ‘위험’으로 분류된다. 같은 날 한국 서울 AQI는 55로, 전 세계 도시 중 59위를 기록했다.

인도 북부 도시 대부분은 뿌옇게 변했다. 짙은 유독성 스모그 탓에 인도를 상징하는 대표 문화유산인 우타르프라데시주(州) 타지마할이나 뉴델리 상징물 인디아게이트가 300피트(약 90m) 앞에서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시야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전날 뉴델리 출발 항공편 88%, 도착 항공편 54%가 지연됐다. 뉴델리를 관할하는 델리주 아티시 총리는 인도 북부 상황을 ‘의학적 비상사태’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인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종말이 다가온 것 같다”거나 “거대한 가스실과 다름없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병원에도 기침, 급성 천식, 알레르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기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인도 정부는 뉴델리 지역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리고 건설 작업도 중단시켰다. 노약자는 물론 일반 시민들도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거리를 떠날 수 없는 시민과 빈민들은 오염된 공기를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뉴델리 릭샤(삼륜차) 운전사 수보드 쿠마르(30)는 AFP통신에 “외부 활동에 생계가 걸려있는 나에겐 실내에 머물 수 있는 선택권이 없다. 눈이 타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뉴델리 등이 위치한 인도 북부 지역은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심각한 대기 오염으로 자주 신음하고 있다. 델리 인근 곡창지대 펀자브와 하리아나주에서는 11월 농작물을 추수한 뒤 잔여물을 태우면서 매연이 발생하고, 도시에서는 난방을 위해 석탄과 목재를 태우면서 나온 연기가 자동차 배출 가스와 섞인다.

설상가상 이 시기에 열리는 힌두교 최대 축제 ‘디왈리’ 때 주민들이 몰려나와 엄청난 양의 폭죽을 터뜨리면서 오염을 더욱 악화시킨다. 겨울에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내륙 분지인 북부 지역 상공에 쌓인 오염 물질이 좀처럼 흩어지지 않는다. 결국 ‘닫힌 가스실’ 같은 최악의 대기 상태가 겨울 내내 지속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는 대기 오염과 관련한 질환으로 매년 100만 명 넘게 사망한다. 정부가 인공강우를 시도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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