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리빙 레전드'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20일(이하 한국시간) 막을 올리는 2024 데이비스컵 파이널스를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한다. 프로 데뷔 이래 장장 23년 만이다.
나달이 속한 스페인은 20일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리는 대회 8강전에서 네덜란드와 격돌한다. 우승 시 독일-캐나다 경기 승자와 준결승을 치른다.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 파이널스는 8개 나라가 경쟁하며, 토너먼트로 우승 팀을 정한다.
나달에게 데이비스컵 파이널스는 프랑스오픈만큼이나 특별한 대회다. 프랑스오픈이 '흙신'이란 별명을 안겨준 애정 어린 곳이라면, 데이비스컵 파이널스는 나달 커리어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나달은 18세였던 2004년 이 대회 결승에서 당시 세계 랭킹 2위 앤디 로딕(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 테니스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가 지난달 10일 은퇴를 공식화하며 "프로선수로서 내게 큰 기쁨을 안겨준 게 2004년 데이비스컵 파이널스였는데, 이곳에서 은퇴를 하자니 마치 (인생의) 한 바퀴를 크게 돌아 제자리에 온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달이 그간 이룬 업적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는 메이저대회에서만 22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그중 절반 이상인 14번을 클레이(흙) 코트에서 펼쳐지는 프랑스오픈에서 이뤘다. '흙신'이란 별명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프랑스오픈이 열리는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정문에 큼지막한 동상을 세웠고,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는 나달을 2024 파리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세워 눈길을 끌었다.
24세였던 2010년엔 역대 최연소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2005년 프랑스오픈을 시작으로 차곡차곡 메이저 대회를 섭렵해가던 나달은 유독 US오픈과 인연이 없어 '그랜드 슬램(호주오픈·프랑스오픈·윔블던·US오픈 우승)'에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2010년 마지막 퍼즐이었던 US오픈 우승에 마침내 성공하면서 단번에 '커리어 그랜드 슬램'으로 올라섰다.
다만 나달은 이번 데이비스컵 파이널스에서 대회 자체보다 자신의 은퇴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해 "가장 중요한 건 팀의 승리"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경기 전날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여기에 은퇴하러 온 게 아니라 팀이 이기도록 돕기 위해 왔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을 돕는 것이고, 내 감정은 마지막 순간에 나타날 것이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감정을 억누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나달의 컨디션이다. 나달은 어려서부터 앓아온 관절 희소병과 각종 부상 때문에 최근 2년간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달은 데이비스컵에서만 29승 1패를 기록, 15경기 이상을 치른 선수 중 최고 승률을 기록하고 있어 이번 대회에서도 마지막 화력을 쏟아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