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가 빠진 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사도광산의 사례가 또다시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학계에서 제기됐다. 일본 정부가 아시오광산과 다테야마·구로베(구로베댐)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며 이번에도 '강제동원(강제징용)'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광산 등재 성공 이후 일본의 이러한 시도는 예상된 바다.
19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갈등과 협력’을 주제로 연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자로 나선 현명호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 도치기현에 있는 아시오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과 문제점을 짚었다. 아시오광산은 근대 이후 개발된 공해 방지 기술을 내세워 '광해방제유산'으로 등재가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조선인 2,400여 명의 강제노동 동원 사실은 누락됐다. 현 연구위원은 "조선인은 위험한 작업에 투입돼 사상자가 상대적으로 많았고, 일본인과 임금 차별이 있었으며 그나마도 제대로 수령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북알프스로 불리는 도야마현의 구로베댐도 마찬가지다. 전영욱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구로베댐은 제국주의 시기 조선인 노동 역사와 직접 연관돼 있다"며 "증언이나 신문 기사 등에서 조선인 노동자의 존재가 확인되지만 (선행연구 부족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관련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다.
일본의 세계유산 추가 등재 추진 움직임은 지난 7월 사도광산의 등재 결정 이후 시작됐다. 현 연구위원은 "일본 문화청이 아닌 (군함도 강제노동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세워졌으나 사실상 이를 부정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 등이 (또 다른 일본의 광산인) 벳시동산과 더불어 아시오광산의 등재 추진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제2 사도광산'을 막기 위해 국제적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데이비드 파머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미쓰비시와 미쓰이 등 강제노동을 악용한 일본 기업들에 압력을 가해 전체 역사를 공개하고 인정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한국 대 일본이라는 구도를 넘어 이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계속되는 역사 왜곡 행보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니콜라이 욘센 영국 런던대 교수는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의 전체 역사를 제시할 의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전략적 수사를 활용하면서도 강제노동과 (노동자) 차별의 발생은 부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나 사도광산 전시관(아이카와향토박물관)에서 한국인을 '한반도 출신 노동력'으로 칭하면서 식민조선에 대한 합법적 징집으로 간주하거나 '모든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 개최를 약속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노동자를 교묘하게 동일한 위치에 두려는 행태를 거론하면서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약속한 사도광산 강제동원 피해자 추도식과 관련, 석주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반도 노무자 명부'는 아직 미공개 상태로 니카타현과 사도광산 측은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며 "추도식에서 '누구'를 추모할 것인가는 전체 역사를 바라보기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차일피일 연기됐던 추도식은 오는 24일 개최를 두고 양국 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는 사가와 교헤이 일본 국립 역사민속박물관 교수, 요시자와 후미토시 일본 니가타국제정보대 교수, 정용숙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등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