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외국인 주장' 아히 "듀스 때 더 집중력 발휘? 비결은 '수비 1번에 커피 1잔' 내기"

입력
2024.11.2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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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카드 아히 인터뷰]
벨기에, 독일서 '커리어 하이' 찍고 V리그 도전
V리그 사상 첫 외국인 주장으로 선임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실력 발휘도 제대로
1라운드 득점 2위, 공격종합 3위.. 팀 승리 이끌어


2024~25 V리그 1라운드 우리카드는 유독 듀스 접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8일 대한항공전(3-2 승)에선 무려 31-29까지 6차례 듀스 끝에 4세트를 접수하면서 승부를 뒤집었고, 12일 OK저축은행전(3-1 승)에선 1~4세트 내내 최대 5차례 듀스를 이어가다 가까스로 승기를 잡았다.

우리카드가 위기의 순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데는 외국인 주장 아히 특유의 재치와 리더십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4일 인천 송림체육관에서 만난 아히는 "24-25 같은 중요한 순간에 일부러 '수비 1번에 커피 1잔'과 같은 내기를 제안하는데, 이게 서로의 스트레스와 긴장도를 낮춰 경기에 더욱 집중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상 듀스 때는 한 번의 수비 실수 혹은 공격 성공이 승패를 가르기 때문에 선수들의 긴장감이 극대화되기 마련인데, 내기를 통해 상황을 보다 가볍게 만들되 승부욕을 자극하고, 집중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아히는 "모든 경기를 듀스에 가지 않고 3-0으로 이기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이럴 때일수록 선수들과 코트 안에서 더 많이 소통하며 의견을 공유한다"고 설명했다.


벨기에, 독일서 '커리어 하이' 찍고 V리그 진출

네덜란드 출신의 아히는 올해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을 통해 처음 V리그에 진출했다. 이미 벨기에 리그에서 6년간 뛰며 4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지난해 독일 리그에선 득점왕에 오르며 '커리어 하이'를 달렸던 그다. 사실상 커리어의 최정점에서 V리그 진출이라는 모험을 감행한 셈이다. 아히는 그러나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며 "벨기에 리그에 있었을 때부터 트라이아웃 지원을 고민했다"고 했다.

벨기에 리그에서 뛰던 마지막 해(2022~23시즌)에 별다른 부상이 없었음에도 출전 기회를 많이 얻지 못해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이때 타이스가 V리그를 제안했다. 타이스는 삼성화재, 한국전력에서 뛰었던 네덜란드 선수다. 그는 아히에게 "V리그는 배구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곳"이라며 한국행을 적극 추천했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던 아히는 독일에서의 성공적 재기를 발판 삼아 한국으로 넘어왔다.


V리그 첫 외국인 주장으로 발돋움

아히는 V리그에 입성하자마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틈도 없이 주장 완장을 찼다. V리그 역사상 외국인 선수가, 그것도 국내에 온 첫해에 주장으로 선임된 건 아히가 처음이다. "최고의 영광"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인 아히는 마우리시오 파에스 감독과 자신의 지향점이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마우리시오 감독은 그에게 △선수들을 하나로 모아줄 것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격려하고,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달라 주문했는데, 아히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했다"며 주장직 수용 배경을 설명했다.

주장이 외국인이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달리 아히는 빠르게 팀에 녹아들었다. 이제는 선수들과 가벼운 농담과 장난도 종종 주고받는다. 코트에서는 남들보다 한발 더 많이 뛰고, 더 크게 기합을 불어넣으며 여느 베테랑 주장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다. 실력발휘도 제대로다. 아히는 1라운드 기준 득점 2위, 공격종합 3위에 올라 팀의 승리를 이끌고 있다. 지난 OK저축은행전에선 올 시즌 가장 많은 37득점을 기록하며 아시아쿼터 알리의 빈자리를 손수 메우기도 했다.


1라운드 가장 인상 깊은 건 '헌신적 수비'와 '허수봉'

1라운드를 돌며 모든 팀들을 다 상대해본 아히는 "어떤 팀이든 한 번씩은 다 이겨볼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히 어려운 팀은 없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대부분의 선수들이 광고판까지 뛰어들며 헌신적으로 수비하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면서도 현대캐피탈의 허수봉을 콕 집어 "서브, 리시브, 블로킹과 공격 모든 걸 다 잘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허수봉은 아히와 1998년생 동갑내기로, 현대캐피탈 주장이기도 하다.

아히의 올 시즌 목표는 봄배구 진출이다. 그는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2위나 3위를 한 뒤 플레이오프를 통해 가는 것도 괜찮다"며 지난 시즌 좌절됐던 챔프전 진출의 꿈을 이뤄보겠다 다짐했다.

김진주 기자
심이주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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