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세희가 전작 이미지를 벗고 당찬 싱글맘 주리로 돌아왔다. 연기를 늦게 시작했지만 자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차근차근 걸어가겠다는 이세희는 내면이 단단하고 또 씩씩하게 살아가는 주리를 닮았다.
최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이세희는 본지와 만나 JTBC '정숙한 세일즈'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품은 성(性)이 금기시되던 1992년 한 시골마을, 성인용품 방문 판매에 뛰어든 '방판 씨스터즈 4인방의 자립, 성장,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본격 풍기문란 방판극이다. 극중 이세희는 미장원을 운영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 주리로 분했다. 강한 생활력을 자랑하는 주리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용 기술을 발전시키며 방문 판매에도 뛰어든다.
최종회를 보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는 이세희는 "주리를 보며 이입이 됐다. 그때 기억이 절절하게 났다"라고 회상했다. 이번 작품이 성인용품 판매 소재이고 또 미혼모를 소화해야 했지만 이세희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정숙한 세일즈'는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뛰어드는 연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 김소연 김성령 김선영과 한다는 것 또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지점이다.
극중 다른 캐릭터들이 각기 다른 전사와 갈등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주리는 풍파를 한 차례 겪었다. 막내이면서도 가장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이다. 웃으면서 직면한 사건과 갈등을 해결하고 특유의 해맑음으로 세상을 향해 걷는다. 이세희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반려견을 떠올리며 주희의 마음을 이해했고 깊이감을 조금이나마 체감했다. 아들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와의 호흡을 위해 시간을 내며 관계를 쌓았고 덕분에 좋은 케미스트리가 완성됐다. 특히 주리가 아들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또한 놓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단다. 이세희는 "주리를 연기하면서 좋았던 건 저는 할 말을 다 하면서 사는 타입이 아니다. 눈치를 많이 본다. 그래서 주리가 부러웠다. 주리는 단단하고 또 이겨내고 있구나. 나도 언젠간 주리처럼 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992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그 시대의 편견과 여성들을 조명한다. 당대의 여성들은 많은 것들에게 구속됐기에 더욱 연대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가 안정화되며 여성이 사회에 진출한 시기이지만 극중 인물들마다 개개인의 상처가 존재하고 여성에 대한 편견에 부딪힌다. 이세희는 "그땐 지금보다 더 차별적인 분위기가 많았고 보수적이다. 저희는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라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시청자들이 생각보다 보수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느꼈고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채널 특성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그런가 하면 이세희는 1991년생으로, 드라마 속 배경인 1992년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터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이세희는 언니들에게 직접 물어가고, 또 90년대 배경을 살린 장소들을 찾아가면서 시대상을 읽었다. 또 김완선 등 당대 스타들의 여상을 찾아보면서 지금의 주리를 완성했다. 그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컸다. 또 인물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면서 자신감이 커졌다"라고 떠올렸다.
현장의 분위기를 묻자 이세희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였다. "제가 사람 복이 많아요. 저는 아직까지 되게 감사하게도 좋은 현장들만 만났어요. 모든 스태프들이 다 같이 제 몫을 했고 작품을 위해 노력했어요. 저도 으쌰으쌰했습니다."
또 배우들과의 호흡을 두고선 장문의 답변을 내놓았다. 이세희는 "성령 언니와 저는 나이가 20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항상 열린 마음으로 현장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농담을 한다. 언니의 허점을 더 보여주려고 한다. 촬영장에서 성령 언니가 가장 많이 조언을 해줬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소연 언니는 저를 무조건적으로 믿어준다. 소연 언니 같은 사람은 살면서 그런 사람은 처음 본다. 말하면 입이 아프다. 앞으로도 못 만날 것 같다. 소연 언니는 모든 스태프들의 마음을 헤아린다. 자기 할 것도 넘쳐나는데 어떻게 모두를 보지. 배려도가 너무 높다. 언니를 보며 그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매 순간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걸 보고 경이로웠다. 선영 언니는 정말 매력적이고 너무 따뜻하다. 생색을 내지 않으면서도 뒤에서 다 챙긴다"라면서 남다른 유대감을 전달했다.
이세희를 여전히 전작 '신사와 아가씨' 속 단단이 캐릭터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이에 이세희는 "중장년층의 의리는 너무 대단하다. 계속 의리로 예뻐해 주신다. 너무 감사하다. 이세희 이름이 없어졌지만 나름의 의미가 있다"라고 바라봤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모습도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비슷한 캐릭터가 들어오더라도 항상 차별화를 고민해요. 제가 연기를 늦게 시작했지만 저만의 속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이 너무 긴데 아직 갈 길이 멀어서 좋아요. 제 속도대로 가는 건 자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