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비동이 어디인지 물었다. “종로구 부암동은 알겠는데 글쎄…” “경기도 부천 쪽이지? 가본 것 같기도 하고.” 고향이 부산인 후배한테도 물었다. “선배, 제가 서울에서 산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모르는 동네가 억수로(대단히) 많습니다. 강남 쪽인가 봐요? 거서는(그곳에선) 안 살아봐서요.”
환절기마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흘러 힘들어하는 친구는 ‘부비동’ 말만 들어도 기분이 나쁘단다. 병원을 서너 군데 다녔지만 쉬운 말로 설명하는 의사는 한 명도 못 만났단다. 어디 이 친구뿐일까. 눈이 뻑뻑해 병원을 찾은 후배는 “맥립종이다. 당장 째고 고름을 짜내지 않으면 실명할 수도 있다”는 의사 말에 덜덜 떨었단다. ‘맥립종’이 ‘다래끼’인 걸 알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째고 왔단다.
병원에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들으면 환자든 보호자든 겁이 나고 화도 날 게다. 코피를 비출혈, 콧물은 비루, 코 막힘을 비폐색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말은 알아듣게 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부비동(副鼻洞)은 코를 중심으로 얼굴 모양을 이루는 뼈 안의 공간이다. 우리말로 ‘코곁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머리뼈에 있는 공기 구멍. 위턱굴·이마굴 등으로 얇은 끈끈막에 싸여 있다”고 설명한다. 이 부위에 염증이 생겨 고름이 차면 부비동염, 흔한 말로 축농증이다. 우리말로는 코곁굴염이다.
감기로 병원에 가도 어려운 말들이 날아다닌다. “비말로 인한 감염 가능성이 높으니 마스크를 꼭 착용하세요.” 비말이 뭐냐고 물으니 타액이란다. “침이에요. 기침, 재채기는 물론 말하는 사이 침으로 옮길 수 있으니 마스크를 꼭 쓰세요”라는 대답을 기대했지만 못 들었다.
감기를 고뿔로 말하는 의사를 만나고 싶다. 순우리말 고뿔의 어원은 ‘곳블’이다. ‘고ㅎ(코)+ㅅ+블(불)’의 형태다. 코에서 나는 불인데, 감기에 걸린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줄줄 흐르는 콧물을 계속 닦거나, 막힌 코를 뚫기 위해 킁킁거리면 코에서 불이 난다.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재미있는 말 고뿔은 ‘곳블’과 ‘곳불’을 거쳤다.
어릴 적 이맘때, 우리 집 안방 윗목엔 콩나물시루가 놓여 있었다. 뒤집어쓴 검은 천을 걷고 물 한 바가지를 뿌려 주면 머리만 큰 콩들에서 다리가 쑥쑥 자라났다. 콩나물들이 뿜어대는 물기로 방 안은 늘 촉촉했다. 엄마가 아침저녁으로 끓이는 콩나물국에 집 안엔 온기가 그득했다. 된바람에 문풍지가 파르르 떨던 그날도 고뿔은 감히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