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외교' 소동

입력
2024.11.18 17: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6년 11월 17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와 90분 동안 회담을 가졌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지 불과 8일 만이자, 외국 정상으로는 첫 단독 회담이었다. 방미 기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만나지도 않았다. 아베는 총리 퇴임 후인 2020년 9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트럼프는 지금까지의 대통령과 다른 유형이었다"며 "취임 전 만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 트럼프는 전통적 외교 프로토콜보다 개인적 유대관계를 중시한다. 이를 주목한 아베는 골프광인 트럼프와 친교를 맺으려고 금장 골프채를 선물했다. 골프 약속을 잡는 것도 회담 목적 중 하나였다. 일본에선 '굴욕 외교', '접대 외교'란 비아냥을 들었지만 골프 외교를 통해 두 정상 간 유대와 미일동맹은 공고해졌다. 골프 회동이 친목 도모 외에 현안에 대한 둘만의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된 것이다.

□ 지난 5일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귀환이 확정되자, 일본에선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아베처럼 트럼프와 골프 외교가 가능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론을 바탕으로 치열한 논의를 즐기는 이시바는 실리를 따지는 트럼프와 정반대의 성격인 데다 십수 년간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중의원 선거 참패로 외교보다 내치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도 불안 요인이다.

□ 대통령실은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트럼프와 골프 외교를 위해 최근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국내 언론과 외신들은 이를 앞다투어 인용 보도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하루 전 윤 대통령의 골프가 한 언론사의 취재망에 포착된 것을 알고 선제 대응한 것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은 지난 8월부터 이달 9일까지 7차례 골프를 쳤다"고 주장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윤 대통령이 이미 석 달 전부터 트럼프 당선을 예상하고 골프 연습을 시작한 셈이다. 이에 대통령실은 사실 확인을 거부하고 있다.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할 외교 전략이 즉흥적인 변명거리로 소비되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김회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