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슨이 링에 오른 이유

입력
2024.11.17 16: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핵주먹(Iron) 마이크 타이슨은 1966년 미국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새를 사랑하는 소심하고 통통한 소년이었지만 열 살 때 동네 불량배가 자신의 비둘기를 죽인 데 격분, 주먹을 휘두르다 싸움에 눈을 뜬다. 소년원을 전전하던 중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영화를 보고 권투 선수를 꿈꾼다. 전설적인 트레이너 커스 다마토는 타이슨을 양자로 삼은 뒤 모든 걸 새로 가르친다. 체계적인 훈련으로 단련된 타이슨은 85년 데뷔 후 19전 연속 KO승을 거뒀고 20세 때 WBC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다.

□ 그러나 친아버지보다 의지했던 다마토가 숨진 뒤 그의 주변엔 사기꾼만 모였다. 방탕해지고 연습도 안 한 타이슨은 90년 일본에서 열린 WBC, WBA, IBF 헤비급 통합 타이틀전에서 버스터 더글러스에게 KO패를 당한다. 점점 망나니가 된 타이슨은 91년 성폭행 혐의로 수감됐고, 97년엔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어 '핵이빨'이란 오명을 얻는다. 막대한 이혼 위자료 등으로 한때 5,000억 원을 넘었던 재산도 탕진했다.

□ 2005년 공식 은퇴한 타이슨이 16일 다시 링에 올랐다. 상대는 구독자 2,000여 만 명을 자랑하는 유튜버이자 사업가 겸 복서인 제이크 폴(27). 2분씩 8라운드 경기 중 3라운드까진 오고 가는 주먹이 있었지만 이후엔 지루했다. 폴의 판정승으로 끝났지만 58세 타이슨도 대등한 경기로 마지막까지 링을 지킨 건 ‘인간 승리’였다. 그러나 스포츠가 아니라 대자본에 의해 잘 짜인 쇼, 대진료(타이슨 280억 원, 폴 560억 원)만 챙긴 비즈니스란 혹평도 나온다.

□ 타이슨은 왜 굳이 링에 올랐을까. 두둑한 노후를 위해 순간의 망신을 감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타이슨은 한 인터뷰에서 “돈도 돈이지만 경기를 준비하며 내 몸을 만들어가는 게 즐겁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는 여전히 짱짱한 몸을 보여줬다. 왼쪽 가슴에 새겨진 숨진 막내 딸의 얼굴도 눈길을 끌었다. 경기 후 타이슨은 “행복하다”며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만족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건 없지 않을까.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