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취재기자 시절에 검찰을 ‘쓰레기 처리장’이라 칭하는 소리를 듣곤 했다. 범죄의 더러움을 다뤄야 한다는 뜻이지만, 정화 기능을 한다는 취지도 있었다. 일선 파출소부터 검찰의 대형 특별수사부서까지 각 단계의 수사기관이 저마다의 의무를 저버리면, 지하철 성추행범부터 서민을 괴롭히는 사기꾼, 국운을 기울게 하는 권력범죄까지 판을 치게 돼 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그 어느 정권보다 거칠게 장악하고 있는 게 수사기관이다. 권력형 범죄, 그중 여권 및 대통령실과 관련한 권력형 범죄 수사는 그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하겠다. 각종 의혹이 수사를 통해 해소가 되지 않으니 대통령 지지율 하락 및 사실상의 국정 마비 상황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혼돈 그 자체보다 혼돈이 끝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인 상황이다.
이러할 때, 혹은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등장해 혼란과 무질서를 정돈하는 것이 전통적인 검찰 수사의 미덕이었다. 검찰 권력에 대한 무수한 비판과 과잉 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검찰 권력의 필요성과 사회 기여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박근혜 정권에서의 국정 농단 수사, 문재인 정부를 흔들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가 대표적이며 그 전에도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러니 현 시국의 답답함은 검찰, 나아가 수사기관 어느 한 곳도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권력형 비리에 ‘찍소리’도 못하는 수사기관들 입장에서는, 수뇌부가 친정권 인사들로 채워지고 그 지휘를 받으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나 밟는다고 남김없이 밟아진다는 게, 지금 우리 수사기관들의 한심한 현주소가 아닌가. 정권과 맞서며 사표를 낸 검찰총장(김종빈·채동욱 등)은 과거의 낭만이 됐으며, 때로 ‘검란’까지 일으켰던 검찰 내부는 미동도 없어졌다. 특별검사 법안조차 윤 대통령이 무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막고 있다. 그야말로 원천봉쇄다.
지금까지 정권 관련 수사를 보자. ①‘채 상병 순직 사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무혐의(경찰) ②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무혐의(검찰) ③명태균씨 공천로비 및 여론조사 조작 의혹 늑장 수사(검찰) ④대통령실의 임 전 사단장 구명 외압 수사 지지부진(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이다. 검찰과 경찰은 의지 부족이고, 검사조차 부족한 공수처는 여력 부족이라 하겠다. 물론 이런 의혹들이 모두 유죄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력을 다해 파헤치고 무혐의로 결론내는 것과 제대로 수사도 하지 못하게 막고 빈약한 해석을 앞세워 무혐의로 이끄는 것은 전혀 다르다.
윤 대통령은 사실상 직을 걸고, 김 여사 및 자신과 관련한 수사를 막으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헌법 왜곡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 임명에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국회 입법 재량”(2017헌바196)이라 했고, 심지어 대법원장에게 특검 추천권을 주는 것도 합헌 결정(2007헌마1468)했다. 헌재는 “특별검사제도는 본질적으로 권력통제의 취지와 기능을 가진다”고 언급했는데, 대체 윤 대통령은 특검의 취지를 뭘로 보는 건가.
특검이 기약 없는 상황에서, 창원지검이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를 구속했다. 고발 9개월 만에야 수사에 나선 걸 볼 때, 대통령 부부의 연루 의혹까지 수사 의지가 있는지 미지수다.
검사선서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라는 부분이 있다. 현실과 대비되는 죽은 문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