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사동 어딘가에 세계 3대 커피 오마카세가 있다 하여 찾아갔다. “언제 적 3대 커피인가” 싶으면서도 궁금해서 용기를 냈다. 주인의 설명을 듣는 척은 했으나, '맛있었던 그 시절의 3대커피' 맛을 경험하지 못했구나 느끼며, 손에 쥔 커피 잔만 바라보았다.
누가 정했는지 모르지만, ‘세계 3대 커피’를 검색하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예멘 마타리가 나온다. 일본에선, 예멘을 대신하여 △킬리만자로가 합류한다. 아마도 일본회사가 마케팅을 위해 만든 게 여태 쓰이고 있는 것 아닐까. 좋은 커피를 확보해 비싼 값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마케팅이 필요했을 테니까.
90년대 초반까지 유통되던 대부분 커피들은 특징이 약한 것들이라, 로스팅과 블렌딩 그리고 추출 방법으로 차별화를 강구해야만 했다. 덕분에 기술은 발달했다. 그런데, 단품만으로도 생산지를 특정할 수 있고, 블렌딩하지 않아도 맛의 균형이 잘 잡힌 커피들이 등장한 것이었다.
스페셜티 커피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인 것을 감안하면, 그 무렵 태어나 지금 30대쯤 되는 사람들은 변화를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아마 '3대 커피’들을 마시게 된다면, 왜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을까 의아할 것이다.
우선, 예멘은 오랜 내전으로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졌고, 탄자니아 역시 일부 지역 외에는 땅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 하와이 코나는 2010년경 커피 벌레인 CBB(커피베리보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2020년에는 커피 녹병까지 발견돼 지금도 생산이 미미하다. 극소량만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종종 ‘의심스러운 것’들도 보인다. 자메이카가 영국 지배하에 있을 때도 블루마운틴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메 커피였다. 모든 커피는 뉴욕거래소의 가격에 좌우됐지만, 이 커피만큼은 독자적 가격으로만 판매됐다. 1990년대는 95%가 일본으로 수출됐는데, 리먼 쇼크(2008년) 이후 고가의 커피가 팔리지 않자, 창고에 방치되던 묵은 블루마운틴이 흘러나왔다. 그 커피를 ‘3대 커피’ 블루마운틴으로 기억할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보다도 비싸고 유명한 파나마 게이샤, 무산소 발효 커피 등이 시대를 향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향미의 커피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다. 과거의 영광을 좇기에는 지금이 너무 풍요롭다. 이 시대가 지나면, 파나마 게이샤의 황홀함도 기억에만 남게 될 수도 있다. 어차피 다 지나간다, 있을 때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