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능 마친 수험생들 '웃음꽃 활짝'
입력
2024.11.15 04:30
기자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4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기쁜 표정으로 고사장을 나와 가족들의 격려를 받고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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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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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 중국 국가 주도 벤처와 무관"… '베일 속' 창업자 량원펑은 누구?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전 세계에 충격파를 안기면서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40)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대중에 노출되지 않은 탓에 몇 가지 이력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어 더 큰 호기심을 자아낸다. 혜성처럼 등장한 '중국 토종파' 량과 딥시크를 두고 중국에선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책이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딥시크는 중국의 국가 주도 벤처 캐피털 산업 테두리 밖에서 생겨난 '별종'이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1985년생 량은 중국 광둥성 잔장시에서 태어난 중국 토종 인재다. 초등학교 교사 부모 슬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중·고교 시절 수학 과목에서 빼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량의 중학교 시절 담임 교사는 "량은 이미 중학교 때 고교 수학을 마치고 대학 수준의 수학을 공부했다"고 전했다. 량은 만 17세인 2002년 대입고사 수석으로 항저우의 공학 분야 명문대인 저장대에 입학했다. 항저우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본사 등이 위치한, 첨단 정보기술(IT)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량은 저장대에서 2007년 전자정보공학 학사, 2010년 정보통신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0년에는 'AI 감시 카메라의 지능형 추적 알고리즘 개선'과 관련된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때 량이 이미 중국 AI 분야 발전 흐름을 파악했다는 평도 있다. 해외 유학이나 글로벌 기업체 근무 경력이 없는 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금융 투자 '퀀트 트레이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대학 친구 2명과 퀀트 전문 헤지펀드 '하이 플라이어'를 창립했다. 량은 2019년 AI 딥러닝 플랫폼을 개발하는 부서를 회사 내부에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투자 기법을 정교화하기 위해 만든 부서가 딥시크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2021년 회사는 최대 1,000억 위안(약 20조 원) 규모 자산을 관리하며 몸집을 불렸다. 이후 량은 2023년 5월 헤지펀드에서 함께 일했던 직원들과 함께 딥시크를 창업했고, 불과 1년 8개월 만에 AI 모델 'R1'을 내놓으며 전 세계 AI 산업 판도를 뒤흔들었다. '딥시크 쇼크'에 중국은 한껏 고무됐다. 현지 매체들은 량이 춘제(중국의 설)를 맞아 고향인 광둥성 잔장시 우촨을 방문했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고향 곳곳에는 그를 환영하는 현수막도 내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량은 지난달 29일 전후로 고향을 방문한 것 외에는 공개 행보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딥시크의 성취는 그간 중국 정부가 자국 기술 분야 육성에 쏟아부은 막대한 지원 덕분이라는 분석이 많다. 호주 시드니공과대 과학정책연구원인 마리나 장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딥시크가 AI 교육과 인재 개발에 대한 정부 투자, 연구 보조금 등의 혜택을 받았을 것"이라며 "중국에서는 (최대 검색 엔진) 바이두가 주도하는 국가 딥러닝 기술 공학연구소 같은 국가 지원 이니셔티브가 AI 전문가 수천 명을 양성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도리어 딥시크는 국가 주도형 산업을 벗어난 결과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딥시크는 중국의 수많은 정부 지원 연구 기관이나 국영 기업에서 배출되지 않았다"며 "(중국 내) 가장 공격적인 양적 사모펀드 중 하나로 유명했던 하이 플라이어는 중국 규제 기관과 자주 다투었다"고 전했다. 딥시크 창업도 중국 정부가 투기성 금융 거래를 규제한 데 따른 대응책이었다는 것이다. 미 뉴욕타임스(NYT)도 "딥시크는 국가 지원이 없는 사기업으로, 바이두 같은 다른 빅테크 업체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며 "량은 오히려 중국이 최첨단 AI 혁신을 선도하려면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고 짚었다. 실제로 량은 지난해 7월 중국 싱크탱크 차이나아카데미와 인터뷰에서 "수년간 중국 기업들은 다른 곳에서 개발된 기술 혁신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빠른 이익이 아니라 생태계 성장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챗GPT가 출시됐을 때 중국 산업 전체는 혁신을 추진할 자신감이 부족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윤대통령 구속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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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있었다" 국무위원들 진술 넘치는데... 尹·김용현 보란 듯 궤변
"계엄을 논의한 정상적인 국무회의였다"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주장과 달리, 12·3일 불법 계엄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선 의사봉을 두드리는 개의 절차도, 의안도, 회의록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무회의는 국가 주요 정책을 심의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지만, 계엄 당일엔 계엄을 밀어붙이겠다는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의지만 있었다. 3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본부장)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은 지난 23일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 나온 발언과 크게 달랐다. 지난해 12월 3일 국무회의는 오후 10시 17분 시작돼 5분 남짓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무회의가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헌재가 판단하면 계엄 선포 자체가 위법이 되는 만큼, 윤 대통령측은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이상민 전 장관 등은 경찰 조사에서 당시 국무회의는 '요식 행위'에 가까웠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김용현 전 장관은 국무회의의 '외연'을 갖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23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첫 증인으로 출석해 "계엄 선포문을 제가 개별적으로 국무위원들한테 나눠주고, (국무회의) 의안으로 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은 김 전 장관에게 "비상계엄 선포문은 참가했던 국무위원들에게 모두 배포되고 심의한 것 맞죠?"라고 되물었고, 김 전 장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국무회의에 '비상계엄 선포문'이 공유됐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는 등 '안건'이 있는 회의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국무위원들은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안건을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전 장관은 "(계엄사령관 임명 관련, 안건 제안이나 제안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고, 최상목 대행도 "국무회의도 아니었으며 회의 안건도 내용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한덕수 전 총리 역시 "평상시 국무회의는 안건을 가지고 시작과 끝을 알리는 절차가 있는데 그때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고, 조태용 원장도 "(안건 관련 문서가) 없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측은 위법 논란을 의식해 계엄 선포를 위한 최소한의 절차를 준수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헌재에 출석해 "12월 3일 오후 8시 30분부터 국무위원이 들어오기 시작해 올 때마다 같이 심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심의를 제대로 하기 위해 국무회의 개최가 가능한 정족수(11명)를 맞추기 위해 기다렸고, 계엄 선포도 예정했던 오후 10시보다 늦은 10시 30분에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국무회의는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뜻이 아니라, 국무위원들의 의지로 열렸다. 오후 8시 40분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의 뜻을 꺾지 못한 국무위원들은 "국무회의는 거쳐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국무회의를 열게 된 배경에 대해 "대통령이 오후 10시 KBS 생방송으로 나간다고 했으니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늦춰서 대통령 생각을 재고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 윤 대통령 측은 당시 계엄에 동의를 표한 국무위원이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은 헌재에서 '국무회의 당시 비상계엄에 동의한 사람이 있었냐‘라는 질문에 "3명 있었다"고 답했다. 다만 찬성한 3명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확보한 국무위원들의 진술 내용은 달랐다. 이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직전 윤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가 "이거 진짜 안 됩니다.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국무위원 전원이 반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국무위원에게 구체적인 계엄 관련 지시를 했고 국무위원들이 이를 명시적으로 거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헌재에 출석해 최 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에게 건넨 문건 외에도 한 전 총리와 이 전 장관, 조 원장에게도 쪽지를 줬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무위원들은 경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최 대행과 조 장관에게 쪽지를 주는 걸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국무회의 전후 상황을 설명하면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일체의 문건도 받지 못했다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12·12 대국민 담화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서버를 확보해야 할 명분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2023년 선관위에 대한 국정원의 보안점검 보고를 근거로 들었다. 조 원장은 그러나 경찰 조사에서 "2023년 선관위 점검 결과 해킹 취약점을 발견한 것은 국정원에서 한 일이 맞지만, 해킹 취약점으로 인해 선거 부정이 발생했다는 보고는 없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주일마다 대통령실에 보고를 하러 가는데 당시 선거 결과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대통령 말은 들은 적은 있지만 다른 대화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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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 90초' 항공기 사고… 꼭 기억해야 할 3대 안전 수칙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로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항공기 사고의 탈출 '골든타임'은 90초에 불과하다. 모든 여객기는 90초 이내 전원 탈출이 가능하도록 설계된다. 항공기 사고에 대비해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이 '3대 안전수칙'이다. 이를 지키면 기내 사고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고, 사고가 일어나도 골든타임 안에 탈출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화재·폭발 위험이 있는 보조배터리 등은 ①머리 위 선반(오버헤드빈)에 보관하는 대신 직접 휴대해야 한다. 짐가방에 넣어 선반에 보관하면 짐에 눌려 화재 위험이 높아지는 데다, 화재 발생 시 빠른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항공 위험물 운송기준에 따라 리튬메탈 배터리, 리튬이온 배터리는 위험물로 분류된다. 카메라, 의료기기 등에 주로 쓰이는 리튬메탈 배터리의 경우 폭발 위험성은 낮은 편이다. 이에 리튬 함량이 2g 이하면 수하물 위탁과 기내 반입 모두 가능하다. 노트북, 스마트폰에 주로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폭발 위험성이 조금 더 높다. 용량이 100와트시(Wh) 이하인 경우 수하물 위탁·기내 반입 모두 허용되지만, 100Wh 초과~160Wh 이하면 항공사 승인에 따라 기내 반입만 가능하다. 보조배터리의 경우도 주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쓰는데, 기준이 더 엄격하다. 규격 제한은 동일하지만, 용량이 낮아도 기내 반입만 가능하고 위탁수하물로 부칠 수는 없다. 보조배터리 등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압착·손상 시 화재를 일으킬 수 있기에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이번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도 오버헤드빈에 보관된 보조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기내에서는 보조배터리를 직접 휴대해야 한다"며 "오버헤드빈은 내부가 보이지 않아 화재 발생 시 인지가 늦어진다"고 짚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보조배터리를 휴대하고 있어야 발열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며 "배터리가 압착되거나 충격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내 사고로 긴급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면, ②비상문 개방·탈출은 전적으로 승무원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이번 에어부산 화재에서는 승객이 승무원 지시 전에 비상문을 개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이라면 굉장히 위험한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인 승무원 지시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김규왕 한서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승무원은 외부 상황을 파악하고 기장과 소통한 뒤 탈출 위치, 주의사항 등을 안내한다"며 "가령 비상탈출 전 엔진을 꺼야 하는데, 승객이 일방적으로 비상구를 열고 나가면 엔진에 빨려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탈출할 때는 반드시 ③짐을 포기하고 맨몸으로 나와야 한다. 항공기 탈출 골든타임은 단 90초다. 짐을 챙기느라 몇 초만 지체해도 본인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최인찬 신라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빠른 판단과 행동이 동반되지 않으면 탈출이 쉽지 않다"며 "좁은 통로를 막고 오버헤드빈에서 짐을 내리는 건 절대 금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9년 5월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는 아에로플로트 '슈퍼젯 100' 여객기가 비상착륙 중 화염에 휩싸였는데, 탈출 당시 10열에 앉은 남성이 짐을 챙기느라 통로를 막아 피해를 키웠다. 탑승자 78명 중 41명이 숨졌는데, 이 남성 뒤쪽 승객은 3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 선반 위 짐은 물론, 발치에 둔 가방도 챙겨선 안 된다. 최 교수는 "탈출용 에어슬라이드는 무척 가파르다"며 "손에 가방을 들고 내려가면 다칠 수 있고, 고무 슬라이드가 지퍼에 찢어질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도 "짐이 떨어져 다른 승객 탈출을 방해하거나 다치게 할 수도 있다"며 "슬라이드를 파손시킬 수 있는 하이힐 등도 벗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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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發 '구호 중단'에 아파도 갈 곳 없는 미얀마 난민… 더 슬픈 쿠데타 4주년
쿠데타 군부의 폭압과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난 미얀마 난민들이 의료 사각 지대에 놓였다. 세계 최대 원조국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 원조 대부분을 일시 중단하면서 미국 지원에 의존해 온 이들의 생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일로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발발 4년이 됐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긴커녕 위기만 짙어지는 분위기다. 31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부터 태국과 미얀마 국경 지대에서 미얀마 난민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온 진료소가 대거 문을 닫았다. 난민촌 내부 보건소도 폐쇄됐고 외부에서 파견 온 의료진도 철수했다. 태국 서부, 미얀마 동부 접경 지역에 자리 잡은 9개 난민촌에는 2021년 2월 1일 발발한 군부 쿠데타를 피해 고향을 떠난 미얀마 난민, 특히 남부 카렌주(州)와 카야주 출신 약 10만6,000명이 머물고 있다. 이들에게 진료소는 빠르게 의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보건 시설이다. 그러나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해외 원조 프로그램 지출 일시 중단을 지시하면서 운영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미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미얀마 의료 시설을 돕는 인도주의 구호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는 곧바로 지원 중단을 통보했다. 시설 운영 자금 약 70%를 미국 정부가 대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료 공백’은 불가피하다. 미국은 우선 자금 지원 적격성을 검토하는 90일간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재임 당시부터 대외 원조 자금을 국내에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온 까닭에 해외 지원 중단 장기화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건강 악화로 급하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굳게 닫힌 병원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난민캠프 관계자는 로이터에 “IRC가 이미 (의료 시설에서) 환자들을 퇴원시켰고, 산소 탱크에 의존하는 임산부와 인공호흡장치를 사용해 온 이들이 (의료) 장비와 약을 사용하는 것도 막았다”고 말했다. 태국 보건 당국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중증 환자를 태국 내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솜삭 텝수틴 태국 보건장관은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모든 난민 환자를 수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치료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난민들의 처지는 군부 쿠데타 발발 이후 4년간 미얀마인이 겪은 고난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 아웅 흘라잉(69) 군부 최고 사령관은 2021년 2월 1일 쿠데타로 아웅산 수치(80) 국가 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정권을 몰아내고 반대 진영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이후 이어진 내전으로 미얀마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경제는 붕괴했고, 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돌게 됐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지난달 29일 낸 보고서를 보면 지난 4년간 미얀마 내전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6,200명에 달한다. 전체 인구의 약 6%에 달하는 350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해 국내·외를 떠돌고 있다. 지난해 미얀마 국내총생산(GDP)은 쿠데타 발발 전인 2020년보다 9% 감소했다. 물가 상승률은 연 25.4%에 달했고, 특히 쌀 가격은 47%나 상승했다. 전체 인구(5,400만 명) 절반은 빈곤선 아래에 살고 있다. 통화(짯) 가치도 고꾸라졌다. 쿠데타 이전 1달러당 1,330짯 수준이던 미얀마 짯화 가격은 올해 1월 4,520짯으로 폭락했다. UNDP는 “쿠데타 발생 4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는 경제 붕괴, 갈등 심화, 기후 위험, 빈곤이라는 전례 없는 다중 위기에 처해 있다”고 평가했다. 평화적 해결은 요원하다. 안으로는 군부와 반군 세력 간 대화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모건 마이클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군부는 여러 지역에서 입은 막대한 손실을 만회하기를 원하고, 기세를 올리고 있는 반군은 앞으로 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진지한 협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밖으로는 우크라이나·중동 전쟁 등 지구촌 관심이 이른바 ‘2개의 전쟁’에 쏠리면서 미얀마 사태가 점점 ‘집안싸움’으로 치부되며 잊히고 있다. 미얀마 상황에 개입하는 나라는 사실상 중국뿐이다. 최근 중국은 미얀마 군정 붕괴를 막기 위해 국경 지역 소수민족 무장단체를 압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