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을 시작으로 뉘른베르크, 드레스덴, 베를린까지 독일 동쪽 지역을 여행했다. 유럽 도시들의 아름다움이야 ‘말해 뭐 해?’지만, 독일의 경우 조금 더 인상적인 면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검게 그을린 건물이 많이 보이는데도 이를 부수지 않고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해 둔 것이 참 부러웠다. 유럽의 아름다움의 원천은 바로 이러한 과거 건축물 등 아름다운 유산들을 그대로 잘 보존한 데 있을 것이다.
건설 자본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다 때려 부수고 새로 지어대는 것에 익숙하다. 안전 진단 하위권 판정을 받았는데, '경축'이라며 플래카드를 내건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은 그저 투자 대상이자 나의 사적 소유물일 뿐, 공공적 의미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그 결과는 현재 우리가 보는 아파트로 가득 찬 도시의 모습이다(그 넘치는 아파트 중 내 집이 없다는 사실은 덤이다).
예전에 한 외국인의 블로그에서 한국을 'cemented country'라고 표현한 것을 본적이 있다. 한국 여행 시 참고할 정보 등을 담은 글이었는데, 한국이 비록 cemented country로 알려졌지만 이러저러한 매력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매력이 많다’는 결론이어서 다행이지만, 시멘트로 덮인 나라라니… 충격적이면서도 정말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가수 아이유의 '하루 끝'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알려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부라노섬은 알록달록 색칠된 집들이 매력적인 곳이다. 집 색깔은 그 집 소유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의 자치구 등 공적 단위에서 정한다고 한다. 유럽에 사는 친척 중 한 분은 베네치아에서 집을 사서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했는데, 이탈리아법상 건축물의 구조 등을 바꾸기 위한 허가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행정 절차를 거치는 데만 2년이 걸렸다고 했다.
또 화가 고흐가 머물렀던 남프랑스 아를이라는 도시에 갔을 때는 어느 예술인의 작은 스튜디오에 에어비앤비로 묵었다. 당시 그 호스트와도 아를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한국의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을 반복하는 건축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자신의 마을에서는 건물 하나를 부술 때에도 사전에 엄청난 토론을 거친다고 했다. 건축물의 공공성에 대한 각 나라의 인식을 알 수 있는 사례다.
건축물 하나가 공적 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고, 바깥 공간은 모두가 향유하는 곳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공동체적 의식이 있는 것이다. 유럽은 아름답고 대한민국은 시멘트 국가인 이유이다. 우리가 감탄하는 그 도시의 아름다움의 기저엔 구성원 전체의 건축물에 대한 공적 인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랬다가는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큰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지금 있는 재개발, 재건축 요건도 툭하면 완화해달라고 난리다. 정치권은 이에 성실히 응답하며 이를 공약으로 내걸고 실행한다. 공적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규제하려 하면 여지없이 재산권 침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한국 사회에서 '재산권'은 기본권 중에서도 최고로 중요한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기본권인 것 같다).
유럽에서는 도시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시멘트를 들이붓는 이 모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