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거 '친형의 정신병동 입원'과 관련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단을 받아 기사회생한 이력이 있다. 대법원에서 극적으로 구제를 받았던 이 대표는, 그러나 이번에 기소된 '김문기 발언'에서는 1심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없었다. 발언한 장소와 전후 맥락으로 볼 때 거짓말의 고의성이 더 짙어 보이는 상황이어서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1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친형 강제입원' 발언 사건과 '김문기 골프' 발언 사건에서 이 대표에게 적용된 혐의는 모두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다. 공직선거법은 '당선을 목적으로 후보자 등에 대해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공정한 민주주의 절차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어서 100만 원 이상의 벌금 판결만으로도 당선무효, 피선거권 5년 박탈에 처해지는 엄격한 법률이다. 이번 이 대표 사건처럼 징역형 집행유예가 확정되면 선거권·피선거권 박탈 기간은 10년으로 늘어난다.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대표의 '친형 강제입원 발언' 사건에서 대의 민주주의에서 '후보자 TV 토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엄격한 법 적용은 오히려 법의 취지를 방해한다는 취지에서 예외적으로 느슨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사건이 경위는 이랬다.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였던 이 대표는 당시 TV토론에서 "형님을 보건소장을 통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셨죠?"라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이후 검찰과 법원에서 인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이 지사는 2012년 4~8월 보건소장 등에게 정신보건법에 따라 입원이 가능한지 확인하도록 지시하는 등 일부 관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대표에 대해 항소심에서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고 확정 땐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권 도전이 무산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새 판례를 만들었다. 선거에서 '후보자 토론'의 역할을 강조하며, 해당 발언이 토론 공방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리 준비한 자료에 의해 일방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연설 등과 달리 (토론은) 후보자 사이에 질문과 답변, 주장과 반론에 의한 공방이 제한된 시간 내에서 즉흥적, 계속적으로 이뤄지게 된다"고 짚었다. 당시 이 대표 발언은 토론 중 상대 공격에 대응하면서 나온 '즉흥적, 수동적 답변'이지 적극적인 허위 사실의 공표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또한 의도적 왜곡이 아니라면 상대 후보 질문을 자신의 입장에 따라 이해한 대로 답변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토론회에서 후보자는 다른 후보자 질문이나 견해에 대해 즉석에서 답하거나 비판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므로 다른 후보자 발언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지 않는 한 자신이 처한 입장과 관점에서 다른 후보자 발언의 의미를 해석하고 대응"하는 것이 선거 과정에서의 일반적인 절차라고 했다. 이 대표의 대답이 강제입원 개입이 아닌 직권남용이나 강제입원의 불법성을 부인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도 했다.
"김문기를 모른다"고 발언한 것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번 사건에서, 법조계 일각에선 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근거로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한 이 대표 발언을 허위사실로 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2021년 말 대선 과정에서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김 전 처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문기를 몰랐다"는 취지로 언론 인터뷰에서 나온 이 대표의 발언들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제시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날 1심 재판부는 이 대표 발언 중 '해외 출장 중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한 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우선 이 발언이 나온 배경이 '친형 입원' 때와 달랐다. 이 대표는 2021년 12월 채널A가 방영하는 '이재명의 프로포즈-청년과의 대화'에 출연해 '김문기 골프' 발언을 했다.
당시 이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4명 사진을 찍어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해보니 전체 우리 일행, 단체사진 중 일부를 떼내 이렇게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말했다. 이번 1심 법원은 이 대표의 이 말이 '해외출장 중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유권자들에게 받아졌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이 대표가 2015년 해외출장 중 김 전 처장과 골프를 친 것으로 확인된 것과 배치되는 의미가 전달됐을 것으로 본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이 대표가 골프 부분에 대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고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이 대표가 당시 김 전 처장 포함 단 2명과 골프를 쳤던 점 △김 전 처장이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대응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계속 도움을 줬던 점 등에 근거해 이 대표에게 기억을 환기할 시간이 충분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거 과정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고려해야 하지만 허위사실 공표로 인해 유권자들이 잘못된 정보를 취득해 민의가 왜곡될 위험성 등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선거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느슨한 잣대를 적용한다 하더라도 명백한 허위사실을 '공표'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재판부는 이 대표 발언들이 김 전 처장과의 모든 교유(交遊·서로 사귀어 놀거나 왕래함) 행위를 부정한 건 아니라고 보면서 검찰이 기소한 일부 범죄사실을 이유무죄로 판단했다. 이 대표가 김 전 처장과의 관계를 완전하게 부인했다는 검찰 주장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