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종교 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가 감히 깎아내렸던 성경 책이 있다. 그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an Epistle of straw)이라 불렀다. 이 서신은 예수의 친형제 야고보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의 아들로 여기지만, 예수는 땅에서 요셉과 마리아의 장남이었다. 그에게는 친형제가 많았다. "그의 아우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가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마태복음 13.55-56).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 친동생 야고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예수를 잘 모르던 이들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를 따랐다. 성경을 추적해 보니 예수가 집을 나가 제자들을 만들고 사역할 때, 야고보는 예수와 함께하지 않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도, 가족 중 어머니 마리아만 그 자리에 있었다. 예수가 죽고 그에 대한 신앙이 퍼져나갈 때, 비로소 그는 친형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 지도자로 성장했다. 기독교 전도와 신학의 핵심 인물인 바울과 함께 심각한 문제를 토론하고 해결했던 기록이 성경에 남아있으며, 바울도 그를 예수 운동의 핵심 인물로 여겼다. "나는 주님의 동생 야고보 밖에는, 사도들 가운데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둥으로 인정받는 야고보와…"(갈라디아서 1.19, 2.9). 더 나아가 그의 서신 야고보서는 성경의 한 책으로 남겨졌다.
그의 글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믿음보다는 행위를 많이 강조한다. 예수를 실제 만난 적이 없었던 바울이 믿음과 형이상학적 이론을 이야기했다면, 야고보는 삶 속 실천과 행위를 강조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야고보서 2.14) 그의 글은 신약 성경에서 실천을 가장 많이 강조한 서신이 되었다.
물론 강조점이 다르지 서로 충돌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음을 강조하면서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비난한 것이지 행실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다. 야고보도 믿음을 헐뜯은 것이 아니라 행위 없는 믿음을 비판한 것뿐이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앞세웠던 마르틴 루터에게 야고보서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예수 생애 최측근의 말이니 귀 기울여 보자.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보서 2:26) 예수의 삶을 어릴 적부터 가장 가까이서 보아왔던 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평소 예수의 행실은 남달랐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