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지난 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을 향해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정부가 구체적인 내역을 제출하지 않은 채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 예산을 요구한 데 대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남겼던 말을 인용해 질타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나흘 뒤까지도 법무부가 요지부동으로 꿈쩍도 않자 검찰 특활비 80억900만 원과 특수업무경비(특경비) 506억9,100만 원까지 모두 전액 삭감했습니다. 여당과 법무부는 반발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이대로 밀어붙인다면 사상 처음으로 수사 특활비 없는 예산안이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각종 비리와 논란에도 '성역'으로 존재해왔던 검찰 특활비가 유례없이 철퇴를 맞자,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열렬한 환호가 이어졌습니다. 중도층 역시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대로 된 견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 평가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행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개운치가 않습니다.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검찰 특활비를 두둔했던 데다,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공격하는 수사·감사기관 특활비에만 칼질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정략적 의도가 읽히기 때문입니다.
특활비는 이름 그대로 정보나 수사, 외교, 경호 등 특수한 국정 수행 활동에 사용되는 예산을 말합니다. 다른 국가 예산과 다르게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공개 또는 증빙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기밀을 다루는 업무상 특수성을 고려한 조치입니다. 하지만 이 점을 악용하는 사례들이 점차 관행으로까지 굳어지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씌워졌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신계륜 전 의원은 과거 국회 상임위원장 특활비를 가계비에 보태거나 자녀 유학자금으로 사용해 논란이 됐고, 매 정권마다 부처 장관들이 사적으로 특활비를 유용한 사례들이 다수 드러났습니다.
그중에서도 검찰 특활비는 유독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왔습니다. 국회는 특활비로 인해 여론이 악화하자 2018년 최소한의 필요 경비만 남긴 채 특활비를 사실상 폐지했고 대법원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기관에서도 특활비를 폐지하는 등 개선 조치가 있었지만, 검찰은 각종 논란에도 자정 노력이 전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을 대상으로 낸 정부공개청구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지난해 6월 사상 처음으로 검찰 특활비 내역이 일부 공개됐습니다. 여기에는 명절 직원 격려금으로 지급하는 '명절 떡값'을 비롯해 △연말 몰아 쓰기 △퇴임 전 몰아 쓰기 △자의적인 격려금 △부서별 나눠 먹기 △비수사부서 지급 △공기청정기 렌털비 △휴대폰 요금 △상품권 구입 등 각종 방만 집행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런 탓에 민주당에서도 검찰 특활비에 강경하게 나갈수록 호의적인 여론이 돌아오리라 기대하는 분위기입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복지 예산도 삭감되는 상황에 국민들이 신뢰할 수 없는 정치검찰에 그렇게나 많은 특활비를 지급하는 것이 옳다고 볼 수 있느냐"며 "검찰 특활비에 대해선 강경한 기조를 이어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이 여당이던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지금과 대응이 상이했습니다. 당시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사건 수사로 수세에 몰린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검찰 특활비 문제를 물고 늘어졌고,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17년 11월 14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법무부 특활비가 많이 깎였는데 어떤가. 괜찮은가"라고 물었고, 박 장관은 "원래대로 승인됐으면 좋았을 텐데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어서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출석했던 박균택 민주당 의원에게 "일선 검찰청에 수사비 지원하는 게 이 비목으로 많이 지원되는 것 아닌가. 수사가 위축이 되고 지장이 될 소지가 없냐"고 하자, 박균택 의원은 "걱정이 많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검찰 특활비는 19억여 원이 줄긴 했지만, 증빙 의무가 있는 특경비로 전환돼 증빙만 한다면 사실상 보전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습니다. 박 의원은 현 법사위원으로, 이번 전액 삭감에 찬성했습니다.
그러다 2020년부터 검찰 특활비를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당시는 '추·윤 갈등' 직후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에 대한 민주당 내 비토가 높던 시기였습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검찰 특활비 50억 원은 윤 총장의 쌈짓돈"이라며 감찰을 지시하며 몰아붙였고, 이후 민주당은 80% 이상 특활비 예산 삭감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에 대한 견제가 극에 달했던 2021년에는 윤 후보가 검찰 특활비를 정치자금으로 썼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습니다.
검찰 특활비를 추적해온 하 공동대표도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의지 부족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2017년 돈봉투 만찬 사건(검찰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 당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불구속 기소한 뒤 수사팀과 소속 간부들에게 특활비로 돈봉투를 지급한 사건)까지 터졌는데도 제대로 검찰 특활비를 감찰하고 제도 개혁을 안 한 점은 잘못"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검찰 특활비 자료가 처음 공개된 게 작년 6월이었고, 작년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의원이었다"며 "이제라도 전액 삭감을 하겠다는 건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그때(문재인 정부)와 지금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며 "지금은 검찰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데 대한 응징 차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활비 제도 전반이 아니라 수사 및 감사기관 특활비만 문제 삼는 점도 석연치 않은 지점입니다. 이번에 특활비 전액 삭감 대상이 됐던 검찰과 감사원은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 및 감사를 담당해왔습니다. 특활비 예산 삭감 자체가 야권의 사법리스크를 의식해 수사와 감사를 압박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지적이 충분히 제기될 만한 대목입니다. 다만, 민주당에선 '검찰공화국'으로 불리는 윤석열 정부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내로남불'식 강경 드라이브에 대해 당내에서도 우려가 나옵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이 나중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이후에 정권을 잡았을 때도 똑같이 할 수 있을지 지금의 후과가 다 돌아오지 않겠느냐"고 한숨을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