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떼창에 '가와이' '이케멘' 환호성...국내 첫 J팝 페스티벌에 2만5000명 몰려

입력
2024.11.11 19:01
8~10일 일산 킨텍스서 '원더리벳 2024' 열려
유우리, 미레이, 스미카, AKB48, 엠플로 등 공연

“힘내자 힘내자 힘내 / 간바로 간바로 간바레”

8~10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J팝 페스티벌 ‘원더리벳 2024’의 셋째 날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일본 싱어송라이터 유우리가 끝으로 ‘빌리밀리언’을 부를 때 대형 스크린에는 일본어 가사의 해석과 우리말 독음이 나란히 쓰였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자연스레 일본어 가사 ‘떼창’으로 유우리와 호흡했다.

11일 국내 첫 단독 콘서트를 하루 앞두고 페스티벌 무대로 국내 팬들과 처음 만난 그는 50분간 이어진 공연 곳곳에서 한글 가사 번역과 “제가 아는 한국어는 ‘괜찮아요’ ‘안녕하세요’ ‘나랑 사겨(사귀어) 주세요’입니다” 같은 한국어 인사로 관객과의 거리를 줄였다. 음원보다 훨씬 뜨거운 감성을 담아 부르는 열창에 팬들은 연신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유우리는 국내 팬들의 호응에 힘입어 내년 5월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이틀간 여는 두 번째 단독 내한 콘서트를 확정했다.

아이돌 걸그룹부터 록 밴드, 힙합 듀오까지 일본 대중음악 현주소 보여줘

일본 인기 대중음악가들 위주로 구성된 사실상 국내 첫 음악축제인 원더리벳 2024는 일본 대중음악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40개 팀 중 일본 팀이 총 27개 팀. 1999년 데뷔해 국내 여러 음악가들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엠플로에서 2022년 데뷔한 신인 도미오카 아이까지, 14년 만에 내한한 아이돌 걸그룹 AKB48와 ‘사카미치 시리즈’로 유명한 걸그룹 사쿠라자카46, 록밴드 스미카와 맨 위드 어 미션, 사우시 독, 싱어송라이터인 미레이와 유우리, 힙합 듀오 크리피 너츠, B급 유머와 하이브리드 장르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그룹 아타라시이 각코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이 무대에 올랐다.

한일 두 나라 음악가들이 한 무대에서 협연하는 장면도 종종 연출됐다. 엠플로의 ‘Tell Me Tell Me’ 무대에는 래퍼 식케이가 함께했고, 국내 그룹 바밍 타이거 공연에는 아타라시이 각코가 함께하며 한일 음악가들이 어떤 공통분모를 품고 있는지 보여줬다. 국내 팀으론 실리카겔, 발룬티어스, 쏜애플, 데이브레이크, QWER, 한로로 등이 공연했다.

첫 행사인 데다 국내에서 비주류인 일본 대중음악 페스티벌이라는 한계에도 사흘간 연인원 2만 5,000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일반 대중에겐 생소한 가수의 공연인데도 여기저기서 일본어 떼창이 이어졌고 ‘가와이이(かわいい∙귀엽다 예쁘다)’ ‘이케맨(イケメン∙미남)’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Z세대를 중심으로 서브컬처(하위문화)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하는 것과 맞물리며 일본 대중음악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관객 대부분은 10∙20대였다. 실제로 티켓 구매자 가운데 10∙20대 비중은 79%에 달했고 30대까지 포함하면 97%에 이르렀다.

'서브컬처' 마니아 확대에 일본 음악도 인기

여타 음악 축제와 달리 남성 관객의 비중이 66.5%로 높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20대 남성 관객 김모씨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을 통해 일본 음악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서브컬처 마니아 중엔 남성이 더 많은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애니메이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오타쿠에게 사랑은 어려워’ 등의 애니메이션 삽입곡을 부른 스미카의 공연에선 일본어 떼창이 쉴 새 없이 이어졌고, 맨 위드 어 미션 공연에선 미레이와 함께 부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주제가 ‘키즈나노키세키(絆ノ奇跡∙인연의 기적)에서 가장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일본 음악 마니아가 주를 이뤄서인지 국내 음악 축제에서 스타 대접을 받는 인기 음악가들에 대한 반응이 상대적으로 미지근했던 것도 이색적이었다. 내년 ‘원더리벳 2025’ 개최를 확정한 주최사 리벳 관계자는 “’원더리벳’ 공연을 통해 일본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국 아티스트를, 한국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J팝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면서 “상호간의 문화 교류에 더욱 힘을 보탤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