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오므린 모양의 '집게손'을 둘러싼, 이른바 남성혐오 '논란'이 '사실'이 돼어가는 과정을 짚다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2015~2017년 활동한 급진적 페미니스트 커뮤니티 '메갈리아(메갈)'에서 여성혐오를 똑같이 되받아치면서 남성 성기 크기를 비하했던 손 동작이 발단이었다. 일부 남성들은 온갖 데서 비슷한 손 모양만 나오면 '메갈의 증거'라고 몰아갔다. 처음에는 아무도 진지하지 않았다. 음모론 놀이에 더 가까웠다. 현실 속 '진짜 여자'를 못 만나서 가상에 매달리는 일부 오타쿠 남성들의 억지라고 보는 게 대세였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편의점 GS25가 반응하면서다. 2021년 5월 캠핑 상품 홍보물 속 소시지와 손 모양이 남성을 비하한다는 주장에 GS25는 해당 포스터를 삭제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2023년 11월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 중 0.1초 남짓한 장면 속 집게손 모양, 2024년 6월 르노코리아의 신규 모델 홍보 영상 속 여성 직원의 집게손까지, 기업이 집게손을 둘러싼 소음에 응답하고 사과하는 일이 반복됐다. 21세기판 마녀사냥인 '페미사냥'으로까지 번진 상황. "온라인 문화 시장은 반(反)페미니스트의 사냥터가 되고 말았다."
책 '페미사냥'은 2016~2024년 잇따른 페미사냥 사례를 깊이 연구하고 낱낱이 분석한 결과물이다.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반페미니즘 남성 소비자 정치의 탄생'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여성학 연구자 이민주(30)씨의 첫 번째 단독저서다. 이씨는 하필 페미사냥이 이뤄진,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바로 그 오타쿠 콘텐츠의 소비자이기도 했다.
책에 따르면 무고한 집게손이 졸지에 남성혐오의 상징이 된 것은 남성들이 몰려 있는 남초 커뮤니티 이용자들이 메갈을 '여자 일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베에는 회원들이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 특정 손모양을 숨겨 두고 인증·과시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를 그대로 메갈에 덧씌웠다는 것이다. 실제 메갈리아에는 그런 문화가 없다. 놀이에 가까웠던 집게손 논란 만들기는 이런 맥락을 누락한 채 조각으로 온라인 환경 안에서 퍼졌다. "남초 커뮤니티는 점차 자신들의 선배가 만들어 낸 메갈의 허상에 몰입하고, 진실로 믿게 되고 말았다."
페미사냥은 일부 남성 집단의 일탈 수준을 넘어섰다는 게 이씨의 분석이다. 시작은 마이너한 오타쿠 문화였지만, 주류 남성 중심의 구조와 만나면서 사회적 현상이 됐다. 2015년 전후로 대중화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백래시로 확산한 것이다. 메갈을 표적삼았던 공격도 페미니즘 전반으로 확대됐다. 그렇다고 남성 피해자론이나 공정 담론을 통한 청년 남성의 박탈감 분출 현상으로 보는 것도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 이씨는 페미사냥의 본질을 '재미'에서 찾았다. "지금의 페미사냥은 남성 중심 커뮤니티의 즐거움을 위한 하나의 오락거리"라는 것이다.
책은 그동안 커뮤니티 외부에서 페미사냥 문제를 다룬 학계와 언론이 간과한 핵심을 찌른다.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며 함께 킬킬대는 즐거움"을 누리던, 오직 남성만 존재하(는 것으로 믿었)던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 특성을 살피면서다. 10대의 반페미니즘 현상 역시 군 복무나 취업 등에 대한 불안의 결과라기보다는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취미·온라인 공동체에 대한 감정적 동조와 그들에 대한 관심 추구, 집단적 놀이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 온라인과 문화 시장에서 남성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욕망 등이 더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책은 짚는다.
"게임에서 여성을 희롱하는 시나리오가 사라져서, 내가 속한 커뮤니티가 다른 커뮤니티에 조롱당하는 게 싫어서 집단 행동에 참여했다고 말하기보다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에 분노했다고 주장하는 쪽이 훨씬 쉽고 명분도 선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 게임 '림버스컴퍼니' 이용자 일부가 페미사냥에 앞장섰던 것도 '게임 속 여성 캐릭터의 이벤트 일러스트 수영복 의상에 노출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개발진 중에 페미니스트가 있다며 색출해야 한다는 논리를 들면서다. 2020년 게임 '가디언테일즈' 대사 중 "이 걸레년이"가 "이 광대 같은 게"로 수정된 조치에도 이용자들은 "페미니스트에 의한 수정"이라고 반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