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이 충남도의 예산과 각종 기금 보관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면서도 충남 지역에 대한 기여는 인색해 비판받는 가운데, 충남도가 의회의 승인 없이 수천억 원의 기금을 농협에 밀어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농협에 대한 특혜 논란과 함께, 혜택을 제공하고도 실리를 챙기지 못한 충남도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행정안전부는 지역 금고 선정 기준 개선에 나섰다.
11일 충남도와 도의회에 따르면 충남도는 지난해 7월 도 금고 선정을 앞두고 2,360억 원 규모의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예치 금고를 2금고에서 1금고로 변경했다.
충남도 관계자는 “일반회계였던 소방재정이 특별회계로 편입되면서 1금고가 아닌 2금고가 관리하게 됐고, 그에 따라 두 금고의 평균 잔액에 차이가 발생했다”며 “평균 잔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을 1금고가 관리하도록 이관 조치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김태흠 지사에게만 보고한 뒤, 의회의 승인 절차 없이 통합재정안정화기금 관할 금고를 변경했다는 것이다. 지방재정법은 지자체가 기금 운용계획 변경 시 반드시 의회의 심의와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은 지자체들이 각종 사업을 수행하면서 회계연도 간의 재정수입 불균형을 조정하고, 재정의 안정적 운용, 각종 회계·기금 운용상 여유 재원 또는 예치금의 통합 관리를 위해 설치하는 기금이다. 이 때문에 통상 일반 계정과 구분돼서 운용되고, 입출금이 흔치 않은 예비비 성격 탓에 금고 입장에서는 이자 수익 등 영업 마진이 커 알짜배기로 분류되는 기금이다.
충남도에 따르면 당시 농협은 1금고로서 일반회계와 지역개발기금 등 충남도 예산 9조9,000억 원 중 약 9조 원을 관리했다. 2금고인 국민은행은 특별회계와 통합재정안정화기금 등 약 9,000억 원을 관리했다. 지난해 9월 1금고에 농협이 재선정됐고 2금고는 국민은행이 탈락하고 하나은행이 새로 선정됐다.
충남도는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소관 금고를 2금고에서 1금고로 변경한 이유로 ‘두 금고의 잔액 균형’을 들고 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충남도 소방재정의 규모는 159억원으로,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의 15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김기서 충남도의회 의원은 “수천억 원의 기금을 맡길 금고를 충남도가 의회 몰래 바꾼 것과 다름없다”며 “명백한 지방재정법 위반이자 특혜 의혹도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 금고 이관 과정을 면밀하게 다시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충남도는 거액의 기금을 농협으로 밀어주고도 이렇다 할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 금고 선정 당시 하나은행은 기여금(협력사업비)을 101억 원 내기로 했지만, '62억 원'을 제시한 농협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 배 가까운 기여금을 약속한 하나은행은 점포 수와 주민편의성 등에서 농협과 게임이 되지 않은 탓이다. 농협은 NH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의 점포 수를 합산해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시중은행들은 '농협은행과 지역농협은 엄연히 다른 법인인데도 금고 평가에서는 두 법인의 점포 수를 합해 평가한 것은 불공정하다'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지자체 금고 선정 기준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행안부 지방재정경제실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 일반화하는 상황에서 은행 점포 개수(주민 접근성)에 높은 점수를 주도록 한 현행 선정 기준은 문제가 있다”며 “금고 은행들이 지역에 더 많은 기여를 하도록 ‘지역재투자율’을 금고 선정 기준에 반영하는 등 지지체 금고 선정 기준을 합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