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거물들을 수사하라고 법무장관을 거듭 졸랐지만 퇴짜를 맞았다. 2020년 재선에 실패한 그는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역대 미국 대통령 1호’이라는 오명을 쓰고 다시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뒤 줄기차게 보복을 예고했다. 4년간 와신상담 끝에 그가 11·5 미국 대선 당선과 함께 돌아온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0일(현지시간) “트럼프가 내년 1월 취임하면 대대적 복수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은 이편이든 저편이든 다르지 않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탈환 성공 당일(6일) 밤 “통합할 때”라고 선언했으나, 트럼프가 실제 그렇게 할 것으로 믿기에는 몇 년간 탄핵과 수사, 기소, 소송에 시달린 그의 깊은 분노와 복수심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게 신문의 분석이다. 트럼프가(家)에 관한 책을 쓴 전기 작가 그웬다 블레어는 NYT에 “보복 여부가 아니라 범위가 문제”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정말 복수에 매달릴지, 불법 이민 단속 등 정책 의제에 집중할지 판단하도록 해 줄 가늠자는 법무장관 인선이다. 매슈 휘태커 전 법무장관 직무대행처럼 공격적인 인물을 발탁하면 ‘처벌 결심’, 제이 클레이튼 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나 법무법인 설리번앤드크롬웰 공동회장 로버트 지우프라 같은 인사를 기용하면 ‘정책 우선 고려’의 신호라고 NYT는 봤다.
의회도 트럼프의 복수를 도울 수 있다. 친(親)트럼프 공화당 하원의원인 짐 조던과 배리 라우더밀크는 지난해 트럼프를 기소한 연방 특별검사 잭 스미스를 다음 회기 때 조사할 계획임을 8일 시사했다.
복수 대상은 많고 방법은 다양하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따르면 유세 기간 중 트럼프가 보복을 위협한 경우는 100번이 넘는다. 조 바이든 대통령,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오바마 전 대통령,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인사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 트럼프를 기소한 검사와 재판을 맡은 판사 등이 언급됐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도 명단에 들어갔다. 찍힌 이들은 검찰 수사·기소 말고도 세무조사, 보조금·대출 갱신 중단 또는 취소, 해고 등 ‘조용한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보복 실행을 부추기는 측근도 있다. 트럼프 당선 일등공신인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다. 그는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좌익 검열 체계를 분쇄하겠다”고 맹세하는 2년 전 트럼프의 동영상을 게시했다. 여기에는 트럼프가 “모든 범죄를 공격적으로 기소하라는 명령을 법무부에 내리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머스크는 “맞다(yes)”고 거들었다. 같은 날 머스크는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대통령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마이크 리의 글을 X에 공유하며 ‘100점’ 이모티콘을 달기도 했다.
정치권의 측근들은 여론전을 펴고 있다. 파장 통제용이다. 이번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로 거론됐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요직 후보군에도 올라 있는 바이런 도널즈(공화) 하원의원은 10일 미국 폭스뉴스에 출연해 “정적 리스트는 없다”며 “(리스트 존재는) 민주당 좌파의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했다가 사퇴한 뒤 트럼프 지지를 선언한 비벡 라마스와미 역시 이날 미국 ABC방송에 출연해 “국가 통합이 트럼프의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