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복귀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조용하다. 북한은 미국 대선 승부가 갈린 지 닷새가 되도록 반응이 없다.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북미 정상이 '브로맨스'를 과시하던 것과 비교하면 이상한 침묵이다. 북한의 목표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 △미국과 군축 협상에 나서고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데 맞춰진 만큼, 출범을 앞둔 트럼프 2기 정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치열한 탐색전을 벌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북한은 과거에도 미국 대선 결과를 즉각 보도하지는 않았다. 버락 오바마의 첫 당선 때는 3, 4일 지나 노동신문에 소식을 전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첫 반응이 나오기까지 석 달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상대는 과거 친서를 30차례 가까이 주고받은 '브로맨스' 정상외교 파트너인 트럼프다. 관계가 돈독한 경우 즉각 '축전'을 띄워 친교를 과시하는 북한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트럼프 당선에 대한 공식 반응을 내놓을지 이목이 쏠린다.
내년 1월 20일 트럼프의 공식 취임 전까지 북한은 치열한 수 싸움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누가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맡느냐에 따라 대북 접근법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내년 3, 4월까지 이어지는 외교안보라인 인선과 인사청문회 국면을 지켜보며 당국자들의 각종 발언에 비춰 미국의 태도를 가늠한 뒤 미국과 접촉에 나설 전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1일 "미국 새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어느 정도 우선순위에 두는지 살펴본 뒤, 그에 따라 외교적 접촉을 수용할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트럼프의 태도와 발언을 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평화협상 분위기를 조성할 경우, 상대적으로 북한에 대한 정책 우선순위가 올라가 북미 대화를 재개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 입장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문제가 북한보다 훨씬 시급한 과제다. 또한 트럼프 1기 정부 당시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감한 만큼, 대북정책이 트럼프의 선택지에서 최우선 순위에 오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한이 트럼프의 당면과제에서 밀린다면, 이에 맞서 김 위원장이 7차 핵실험으로 존재감을 과시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다만 선제적으로 북한이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의중을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핵실험 카드를 쓸 경우, 북한은 물론이고 트럼프도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북미 협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급할 게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와 관계는 병력 파병을 통해 '혈맹'으로 진화했고, 2019년 2월 트럼프와의 '하노이 노딜' 때와 달리 북한의 핵 능력은 더욱 고도화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017년 '핵무력 완성'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북한이 이를 명분 삼아 2018~2019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협상 국면에 등장한 전적이 있는 만큼, 담판을 짓기 위한 카드로 핵실험을 아껴둘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