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언행으로 지탄을 받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이 결국 탄핵됐다. 올해 5월 회장에 취임한 지 불과 6개월 만이다. 의협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내부 혼란을 수습하고 의정 갈등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전공의들이 임 회장 퇴진 시 의협과 연대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만큼 새로운 리더십 출범을 계기로 의정 갈등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협 대의원회는 10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임 회장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재적 대의원 248명 중 224명이 출석했고 170명이 찬성표를 던져 찬성률이 76%에 육박했다. 반대는 50표, 기권은 4표였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재적 대의원 3분의 2(166명) 이상 출석과 출석 대의원 3분의 2(150명) 이상 찬성 시 가결된다.
앞서 의협 대의원 103명은 의대 증원 대응 실패, 연이은 막말과 실언, 의사 명예 실추 등을 문제 삼아 임 회장 불신임안과 비대위 설치안을 발의했다. 최근 임 회장은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 정신장애인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공의 지원금을 임 회장이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게시한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 원을 요구한 사실도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임 회장은 탄핵을 막기 위해 대의원들에게 서신을 보내 거듭 사과하고 막말 논란의 진원지였던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했다. 이날도 표결에 앞서 "전공의와 의대생의 목소리를 충분히 경청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한다"며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도록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으나 불명예 퇴진을 피하지 못했다. 탄핵안 가결 직후 임 회장은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문 채 침통한 표정으로 의협회관을 떠났다.
의협은 대의원 투표를 거쳐 비대위를 설치하기로 했다. 11일 비대위원장 선출 공고를 내고 12일까지 신청을 받은 뒤 13일 오후 8시 대의원 모바일 투표를 거쳐 비대위원장을 뽑는다. 비대위원장은 대의원이 아닌 일반 회원도 출마 자격이 있기 때문에 공개 모집 방식을 택했다. 임기는 차기 회장 선출 때까지다.
회장 보궐선거는 규정상 60일 안에 치러야 한다. 하지만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올해 안에 회장을 빨리 뽑자는 내부 여론이 비등해 비대위 운영 기간은 더 짧아질 가능성이 크다.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주수호 전 의협 회장,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 김성근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대변인 등이 거론되고 있다. 비대위원장도 회장 출마가 가능하다.
기존 집행부는 차기 회장 당선 전까지 의협 회무를 수행하고, 비대위는 의정 갈등 대응, 전공의·의대생과 연대 모색 등 주로 대외 현안 해결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 대의원회는 비대위원장에게 의대 증원 문제에 관한 전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추가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대위원장 성향에 따라 의정 갈등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주 전 회장과 황 회장은 의대 증원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강경파, 김 회장과 김 대변인은 협상에 무게를 둔 상대적 온건파로 분류된다.
전공의들이 지지하는 비대위원장이나 신임 회장이 선출되면 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소통을 복원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줄곧 임 회장 사퇴를 요구하며 의협과 갈등을 빚어 온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앞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의협과 연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총회에 내빈 자격으로 참석해 표결 과정을 지켜본 박 위원장은 임 회장 탄핵안이 가결되자 "결국 모든 일은 바른 길로"라는 한 줄 평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당장 11일 출범하는 여야의정 협의체에 의협이 합류하게 될지도 관심사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비대위가 구성되면 전공의들과 긴밀하게 논의하며 전공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도록 할 것이고 비대위에도 전공의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여부도 비대위가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의체 참여 여부보다 협의체에서 내린 결정을 대통령실이 수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는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의협 참여 여부는 비대위가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며 "협의체는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