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이시윤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9일 낮 12시 40분 별세했다. 향년 89세.
이 전 재판관은 1958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가 됐다. 1962년 서울지방법원(현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임관한 뒤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수원지법원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 지명으로 초대 헌법재판관이 됐다. 헌재는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이뤄진 제9차 개헌 때 생긴 헌법기관이다. '한정 합헌' 등과 같은 결정 양식,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은 고인이 제안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관계자는 "고인은 헌재 1기 재판관으로서 헌재의 기틀을 마련하고 헌법재판을 활성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재판관은 민사소송법에 신의성실의 원칙을 도입하는 등 민사소송 제도가 자리 잡는 데도 큰 기여를 했다. 1982년 그가 펴낸 민사소송법 교과서는 법조계 필독서로 꼽혔다. 민사소송법의 대가인 이기택 전 대법관은 "법리와 실무 양쪽에서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양자를 잘 연결해 모든 법률가에게 최고의 민사소송법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1993년 고인은 재판관 재임 중 김영삼 정부에서 제16대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감사원장 퇴임 후 한국민사소송법학회와 한국민사집행법학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직을 맡았고, 1999년부턴 민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민법 개정을 지휘했다.
유족으로 아들 광득·항득씨와 며느리 김자호·이선영씨, 손녀 지원씨, 손녀사위 류성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2일 오전 7시 4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