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한 ‘신산(神算)’ 이창호, “2,000승이요? 지금처럼 가다 보면…”

입력
2024.11.09 04:30
16면
<9> '한국 바둑의 전설' 이창호 9단
어릴 적 타고난 체격으로 ‘모래판’ 황제 꿈꿔
조훈현 9단과 사제의 인연…내공 업그레이드
K바둑 ‘국보’ 타이틀에 병역 혜택도 주어져
2005년 ‘상하이 대첩’ 5연승은 평생 못 잊어
“반상 인생에 한계 없어”…‘느림의 미학’ 여전

편집자주

현역 시절 뛰어난 활약을 펼쳤던 스포츠 스타들의 과거와 현재를 집중 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종목을 막론하고 대한민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찍어낸 전설들의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과 현재의 삶을 조명하고 은퇴 후 제2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자신만의 건강 관리법 등을 함께 들어봅니다.


“솔직히 저도 잘 몰랐습니다만…”

머쓱함부터 스쳤다. 대기록 달성 소감을 묻는 질문에 돌아온 흐려진 말끝에서다. 귀신같은 계산 능력으로 세계 바둑계를 평정했던 ‘신산(神算)’의 반응이었기에 더 그랬다. 사실상 무한대 경우의 수로 점철된 반상(盤上) 전투에선 0.5집까지 정밀 진단이 가능한 그의 역량을 익히 인지했던 탓도 컸다. 지난달 16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만난 이창호(49) 9단과 ‘통산 1,900승 돌파’ 축하 메시지에 이어진 무덤덤한 답변 속의 행간이다. 순간적으론 ‘숱한 기록 속의 일부로 치부된 건가’란 생각에 고개도 갸우뚱해졌다. 하지만 이어진 “그것(1,900승 달성)보단 지금까지 한 판, 한 판씩 대국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큰 행복이다”라고 귀띔한 그의 부연 설명에서 이 의구심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요즘 이 9단은 말 그대로 ‘회춘 모드’다. 최전성기와 비교할 순 없지만 '지천명'(50세)을 코앞에 둔 시점에도 올해 53전37승1무15패로(8일 기준), 승률이 71% 이상이다. 지난 9월 말엔 통산 1,900승까지 수확했다. 이는 지난 2012년 9월, ‘K바둑 황제’인 조훈현(71) 9단에 이은 역대 두 번째 기록이다. 비결을 물었지만 이 9단은 “별로 없다”고 했다. 입단 이후, 반세기 만에 도달했던 조 9단 기록을 약 12년이나 단축시켰음에도 이 9단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란 답변만 반복했다.

정점에선 내려온 이후, ‘반상 인생 2막’에 들어섰지만 이 9단은 K바둑계의 전설 중의 전설이다. 우선 지난 1986년 입단 이후, 수집된 기록이 독보적이다. 최연소(14세 1개월) 타이틀(1989년, 제8기 KBS바둑왕전) 획득과 최연소(16세 6개월) 세계대회(1992년, 제3회 동양증권배) 우승(프로기사 최초 세계기네스북협회 등재) 등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외 각종 기전에서 차지한 우승만 총 141회.

특히 반상 권력 서열의 바로미터인 역대 세계 메이저 대회 우승은 17회로, 여전히 범접 불가다. 이세돌(41, 14회·2019년 은퇴) 9단과 조훈현(9회) 9단, 구리(41, 8회) 9단 및 커제(27, 8회) 9단 등이 밀려날 정도다. 현재 세계 1위인 신진서(24·7회) 9단과도 격차가 크다. 신 9단과 최전성기 이 9단을 비교한다면 어떨까. 이 9단은 ‘돌부처’란 별명답게 무표정한 모습으로 “무의미하다”라고 일축했지만 뉘앙스는 후배에게 실렸다. 15년 이상, 세계 바둑계 지존으로 군림했지만 자신에겐 냉정했던 ‘돌부처’. 40여 년 전 출몰한 그는 잉태 배경부터 심상치 않았다.

‘천하장사’ 꿈꿨던 초딩 씨름왕…우량아 선발대회부터 입상 두각(?)

두뇌 스포츠 최고봉에 오른 이 9단은 유년 시절엔 의외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75년 전북 전주 태생인 그의 재능은 ‘모래판’에서 솟구쳤다. 1970~80년대 국내 최고 인기 프로스포츠로 주목됐던 씨름에 심취하면서다. 타고난 체격 또한 ‘천하장사’에 버금갔다. 3㎏ 안팎의 신생아 표준 몸무게를 훌쩍 초과한 4.8㎏으로 세상에 등장한 이 9단은 생후 17개월 무렵, 전국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당당히 2위에 올라섰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엔 모교에서 ‘씨름왕’까지 차지했다. 이 시절을 “모래판에선 거의 패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한 이 9단도 “바둑을 두지 않았다면 씨름 선수는 가장 유력한 제 미래 모습이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6세 당시 할아버지 손에 의해 동네 기원을 돌면서 접했던 반상이 그의 눈에 신세계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오늘날 K바둑의 ‘국보’도 볼 순 없었단 귀띔이다. 그에겐 씨름만큼이나 즐겼던 전자오락게임(갤러그, 엑스리온)도 가로와 세로, 각각 19줄로 얽혀진 오묘한 반상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갈수록 시들해졌다.

‘바둑황제’ 조훈현 9단과 운명적인 동거…K바둑 내제자 ‘1호’

이 9단 반상은 할아버지에 의해 설계됐다. 고향 내 바둑 고수였던 아마강자 이정옥 사범과 전영선 프로 7단도 직접 수소문, 이 9단 스승으로 모셔왔다. 이 9단 바둑 인생의 변곡점을 가져온 조 9단과의 운명적인 만남 또한 전 7단이 주선했다. 우여곡절 끝에 1984년, 이 9단과 운명적인 동거를 허락한 조 9단은 당시 국내에선 최고 1인자였다. 세계 최연소(9세 7개월) 입단 기록 보유자인 조 9단은 국내 전관왕만 세 번(1980년, 82년, 86년)이나 차지했다. 훗날엔 국제기전 그랜드슬램(응씨배 1989년, 동양증권배 1994년, 후지쓰배 1994년) 타이틀 획득을 포함해 국내외 우승 기록은 모두 161회에 달했다. 그랬던 조 9단은 이 9단에겐 일반적인 1대1 지도 대국 대신 제자의 대국 복기로 맥점을 전수했다. 이 9단은 이렇게 시작된 한국 바둑계 ‘내제자 1호’ 수련 과정을 견뎠고 2년 뒤인 1986년엔 프로 입단에도 성공했다. 할아버지는 그해 말 “창호가 세계 제일이 되도록 뒷바라지를 잘하라”란 유언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국회의원 105명, 사상 초유 ‘연명’…프로바둑 1호 공익근무원

할아버지와의 이별 이후, 바둑 이외엔 무신경했던 이 9단 타향살이는 순탄할 리 만무했다. 낯선 등·하굣길에 버스정류장을 놓치기 일쑤였고 끈 풀어진 운동화도 누군가 묶어주기 전까진 그대로 신고 다녔다. 이 와중에도 바둑엔 진심이었던 이 9단은 스승에게 각종 타이틀을 회수했다. 그렇게 보내기를 7년.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는 스승의 하명과 고교 입학 시점까지 맞물리면서 이 9단은 조 9단 둥지를 떠나게 됐다.

홀로서기에 나선 이 9단에겐 깜짝 사건도 불거졌다. 군입대를 앞둔 1995년 당시 ‘국보를 3년 이상 군대에 보낼 순 없다’는 우려가 바둑계 안팎에서 퍼진 것. 급기야 105명의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이 9단 후원회가 결성됐고 병역법 시행령 변경 청원도 등장했다. 결국 그에겐 4주 군사훈련 이후, 한국기원 소속의 공익근무요원 복무(3년) 혜택이 주어졌다. 군사훈련 기간 동안, 연병장 호출에 매번 군화끈 매기에 실패하면서 집합 시간마다 꼴찌로 문제를 일으켰던 이 9단에게 조교의 똑딱단추 군화 선물은 웃지 못할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 통해 재소환된 ‘상하이 대첩’ 5연승 주인공

공익근무를 마친 이후에도 이 9단은 상승세였다. 그는 이 가운데 가장 기억된 대국에 대해선 2005년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졌던 바둑 삼국지로 알려진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꼽았다. 이 9단은 “국가대항전이다 보니, 책임감도 컸다”며 “당시엔 특히 제 개인적인 성적이 좋지 않았던 시점이어서 더 부담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선은 첫 대국만 이기자고 다짐했고 이후엔 매 판 더 집중하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떠올렸다. 농심배는 한·중·일 3개국에서 5명의 국가대표들이 출전, 연승대항전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9단은 19년 전 이 농심배에서 중국(3명)과 일본(2명) 기사 5명에게 기적 같은 싹쓸이 5연승으로 한국팀에 우승컵까지 선사, ‘상하이 대첩’을 완성했다. 이 시나리오는 한 케이블 방송 드라마에도 소개되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때 현재 중국바둑협회 주석(회장)인 창하오(48) 9단이 이 9단에 대해 “한국 기사를 모두 꺾어도 이창호가 남았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다”라고 남긴 극찬은 아직도 세계 바둑계에 회자되고 있다.

‘느림의 미학’ 돌부처, 1,900승 돌파…진짜 승부는 이제부터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9단이지만 ‘변심’도 고백했다. 이 9단은 과거 장고에 적합한 ‘안정적인 실리형’으로 수많은 경쟁자의 반상 수명을 단축시켰다. 그랬던 천하의 이 9단에게도 급변한 흐름 앞에선 우회로가 필요했던 것. 당장, 국내 최대 기전인 올해 ‘KB국민은행 바둑리그’(우승상금 2억5,000만 원) 또한 초속기(기본 1분, 추가 10초·본보 10월 14일 자 [단독] ‘2024~25 KB바둑리그’ 파격…전 경기 ‘초속기 1분 10초‘ 대국) 방식을 전격 도입했다. 이 9단이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밝힌 이유다.

일단, 방향 전환은 긍정적이다. 올해 ‘쏘팔코사놀 2024 레전드리그’(우승상금 3,000만 원)에서 수소도시 완주팀 소속의 이 9단은 공동 다승왕(11승3패)에도 올랐다.

그럼에도 서두르진 않겠단 자세다. 2,000승 도달 예상 시기에 대해 “열심히 한 판씩 두어가겠다”라고 대신한 이 9단의 공언에선 평소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승부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밝혀 온 ‘느림의 미학’이 그대로 묻어났다.




허재경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