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의 다음 주인이 되면서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될 전망이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더 극단적이고 즉흥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노선 키워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거래주의(transactional approach)’와 ‘힘에 의한 평화’로 꼽힌다. 미국의 이익만을 따져 이익이 되는 분야에서만 압박을 통한 주고받기식 거래를 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때문에 동맹과의 관계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6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으로 인해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가자지구 전쟁을 국제사회가 공을 들이는 협상이 아니라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달성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트럼프 1기 때도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는 수십 년간 이어져온 미국의 중동정책 기조는 물론 국제사회 합의까지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었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이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고 선언했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리아 땅 골란고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했다. 아랍 국가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데도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으로 이스라엘의 오랜 숙원을 풀어줬다.
반면 이란과의 핵합의는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20년 1월에는 이란을 직접 공습해 이슬람혁명수비대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인 카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했다. 외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군사적 수단도 주저 없이 사용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가자전쟁 휴전 협상에 힘을 쏟는 데 대해 “이스라엘의 손을 등 뒤로 묶으려는 노력”이라고 힐난했다. 지난달에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란 핵 시설을 공격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걱정하라”고 조언했다.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트럼프 1기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이란 정책을 총괄했던 로버트 그린웨이는 “군사적 수단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유일하고 실행 가능한 옵션”이라고 FP에 말했다. 힘으로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트럼프 2기 외교안보전략의 대표적 사례인 셈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접근은 '거래'에 방점을 찍고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미국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고 반대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종전 해법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이번 선거 기간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그가 말한 공정한 거래는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어치파 우크라이나의 힘만으로는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할 수 없으니 조건부 항복을 하라는 압박에 가깝다.
종전을 위한 로드맵은 JD 밴스 부통령 당선자의 발언에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밴스는 유럽이 평화협정의 세부 사항을 마련하도록 맡길 것이라면서도 현재 전선을 따라 비무장 지대를 만드는 방안을 거론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고, 우크라이나를 중립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이 같은 구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월 우크라이나와 미국·이탈리아·독일 등에 제시했던 종전 조건과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크라이나가 수용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트럼프 측은 군사 지원 중단을 시사하며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식 거래주의 해법이 관철된다면 국제사회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차지한다면 영토 주권 또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잘못된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에 대만을 무력 침공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FP는 “트럼프가 많은 국가에 취했던 것과 같은 거래적 접근 방식을 대만에 적용하고 있다”며 트럼프 2기가 바이든 행정부와 가장 다른 점은 대만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는 “우리는 보험회사와 다르지 않다”며 “대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방위비를 지불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보좌관을 지낸 피터 피버 듀크대 정치학과 교수는 외교안보 전문매체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외교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적나라한 거래주의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맥락은 극적으로 바뀌었다”며 “오늘날 세계는 그의 첫 임기 때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