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합법화' 지지 30%는 트럼프 투표… 해리스, 임신중지권 이슈화 실패

입력
2024.11.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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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합법화' 결정한 4개 주서 트럼프 승리
임신중지, 중간선거 당시 민주당 압승 견인
대선서 경제 이슈에 밀려 유권자 유인 실패

2022년 임신중지(낙태)에 대한 미국 헌법상 권리를 뒤집은 '로 대 웨이드' 판결 폐지 이후 치러진 첫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슈화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낙태가 합법화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 3명 중 1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대선이 실시된 날 임신중지 관련 투표에서 이 권리를 주(州) 헌법으로 인정하기로 한 일부 주에서도 트럼프가 승리를 거뒀다. 본래 재생산권(스스로 출산을 결정한 권리)은 이번 대선 민주당이 앞세운 핵심 의제였는데 득표로 연결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유권자들은 이미 두 진영 간 논쟁거리로 소모된 낙태 의제에 집중한 민주당보다, 일상과 직결된 이슈를 말하는 공화당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선 당일 낙태권 투표...찬성한 주도 트럼프 찍었다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전날 일부 주에서 진행된 대통령 선거와 임신중지권 표결에서 상반된 결과가 나왔다. 5일 각 주에선 주 헌법 개정에 대한 주민투표가 대선과 함께 진행됐는데, △네브래스카 △네바다 △뉴욕 △사우스다코타 △미주리 △몬태나 △메릴랜드△애리조나 △콜로라도 △플로리다 10개 주에선 이번 대선의 최대 현안 중 하나였던 임신중지권을 다뤘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49년 만에 폐기되면서 임신중지권 존폐 여부 결정권은 개별 주로 넘어간 상태였다.

투표 결과 네브래스카, 사우스다코타, 플로리다를 제외한 7개주는 임신중지권을 인정하거나 그 권한을 확대한다. 강간과 근친상간에도 예외 없이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한 애리조나와, 주수에 상관없이 모든 중절을 막은 미주리의 금지령도 무효화 됐다. 몬태나와 네바다처럼 이미 낙태가 합법이었던 주들도 이번 표결을 통해 임신중지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하기로 했다.

본래 임신중지는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밀던 핵심 의제였던 만큼 임신중지권 지지자가 많으면 대선 투표에서도 민주당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대선 투표 결과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자는 미주리에선 58.5%의 득표율을 얻었고, 애리조나(52.3%)와 네바다(51.5%)에서 안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몬태나에선 58.6% 득표로 민주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38.3%)과의 격차는 2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특히 AP통신 설문조사에 따르면 '모든 경우 또는 대부분의 경우 낙태가 합법화되어야 한다'고 답한 유권자의 30%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고 한다. 민주당 입장에선 실망스러운 결과다.

앞서 민주당은 2022년 중간선거와 지난해 11월 열린 버지니아 주의회 상·하원 선거에서 임신중지권 보장을 앞세워 예상 밖 압승을 거뒀다. 득표력이 증명되자 민주당은 이번 대선에서도 임신중지권 수호를 부각해왔다. 해리스도 대선 후보 첫 연설부터 "생식의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에선 효과가 없었던 셈이다.

'권리'보다 '생계' 택한 유권자들

이런 괴리가 발생한 이유로는 이념적 의제만을 부각한 민주당의 판단 오류가 꼽힌다. 유권자들은 AP 설문조사에서 이번 대선 가장 중요한 이슈로 경제와 일자리(39%), 이민(20%)을 꼽았다. 민주당의 약한 고리로 지적되던 항목들이다. 낙태(14%)는 그 다음이었다.

결국 임신중지권을 옹호하는 유권자라도 경제와 일자리 문제 등 생계와 직결된 '먹고사니즘'을 말하는 공화당에 표를 던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미 온라인매체 액시오스에 "민주당 선거 운동은 경제와 국경, 범죄율 증가에 대한 언급 없이 낙태에만 집중됐다"고 꼬집었다.

WSJ는 "트럼프는 유세 중 '임신중지는 주의 판단'이라는 미지근한 태도로 틀었고, 이는 임신중지권을 지지하는 유권자에게 다른 공약에 근거해 그에게 투표할 만큼 충분한 확신을 줬다"고도 분석했다.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