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인공지능(AI) 선도국인 미국과 우리나라의 기술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호무역 기조에 더불어 대중(對中) 견제 강화로 반도체 공급망에 급격한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전략적인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로 AI 분야 초격차 기술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7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가 함께 마련한 ‘미 대선 결과에 따른 과학기술 대응전략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과학기술 전략이 미국 중심의 AI 산업 성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이주헌 과기정통부 전략기술육성과장은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기간 동안 바이든 행정부의 AI 행정명령을 폐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AI에 대한 규제 완화를 공공연히 강조해왔다”며 “미국과의 AI 기술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 우리 기업이 미국 AI 서비스 시장에 진입하는 장벽이 더 강화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AI 행정명령은 AI 개발 과정의 안전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국가안보와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AI 개발을 규제하는 내용이나, 빅테크 기업들은 AI 행정명령이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참석자들은 AI 규제 완화가 '법인세 최대 15% 인하' 같은 공약과 더불어 빅테크 기업에 걸린 빗장을 풀어 초거대 AI 개발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해 적극 지원한 것처럼, 2기 때도 AI 주도권 강화를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국방기술 같은 안보 분야에서 AI를 활용하는 연구도 활발해질 거란 전망도 나왔다.
이는 AI 반도체 수요의 증가로 이어지겠으나, 대중국 제재 강화에 따른 반도체 공급망의 불안이 커지면서 우리 기업들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역 제재 강화로 인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선거 기간 한국산 반도체에도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발제자인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존 대중국 제재는 이미 상용화한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가 주를 이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아예 해외 투자 자체를 규제해 미래 기술 발전을 제재하는 등 광범위한 조치가 예상된다”며 “국내 기업에 돌아갔던 반도체 보조금 등도 변경될 가능성도 있어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앞으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전략적 국가 R&D 투자를 통해 초격차 기술을 강화해야 한다고 참석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공화당의 과학기술 정책 기조상 미국은 앞으로 국가 주도 R&D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틈을 역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회준 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장은 “한국 경제는 반도체 의존도가 높지만, 정작 국가 차원의 육성 전략은 물론 생태계도 부실하다”며 “지능형반도체(PIM), 뉴로모픽 기술 개발 속도를 높이고 제조업과 AI를 결합한 솔루션에 투자해 기술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