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통령이 '참어른'이었으면 좋겠다

입력
2024.11.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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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죠." "누가?" "여경래 셰프요." "왜?" "흑백요리사 요번 거 안 보셨어요?" 한 달 전쯤, '흑백요리사'에 푹 빠진 후배가 밥 먹다 말고 '스포'를 날렸다. 50년 경력의 스타 셰프가 무명 셰프와의 요리 대결에서 졌는데,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를 격려하는 품격 있는 모습에 '참어른'이라 칭송이 자자하다는 것이다. "흠, 요새 어른이 없긴 없지…" 수긍 반 탄식 반, 맞장구를 치고 나니 '도대체 어땠길래?' 하는 궁금증이 따라왔다. 돌아온 주말 놓친 회차를 이어 보며 어른의 품격을 직접 확인했다. 마음이 뭉클했다.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는 명성이 드높은 스타 셰프들이 '백수저'로, 명성이 덜한 재야의 고수들이 '흑수저'로 출연해 오직 맛으로만 승부를 가렸다. 한마디로 '계급장 떼고 붙는' 방식이니, 그랜드 마스터이자 중식계의 레전드로 통하는 여경래 셰프에겐 애초부터 '이겨도 손해, 져도 손해'인 게임이다. 여러 유명 셰프가 "내가 거길 왜 나가?"라며 고사했지만 여 셰프는 출연을 결심했고, 경연 초반 무명의 흑수저에게 완패했다. 예상 못 한 반전 앞에서 심사위원들조차 표정이 굳어 버린 그 순간, 그는 홀로 웃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해야 하니까요." 바로 이 장면에서 '대인배' '이 사회의 진짜 큰어른'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후배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침체된 요식 산업을 살리고 싶었다는 출연 동기도 후일담으로 전해지며 훈훈함을 더했다.


많은 사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른을 발견하고 감동을 얻던 그 무렵 뉴스 채널에선 대통령 부인에 대한 각종 의혹 보도가 쏟아졌다. 명품가방 수수 의혹, 주가조작 의혹, 잇따른 검찰의 무혐의 처분 소식은 무더위에 지친 민심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사과와 해명 요구가 거셌지만 대통령실의 대응은 국민의 기대와 멀었다. 가을로 접어들어서는 정치 브로커가 연루된 공천개입 의혹이 불거졌고, 육성 통화 녹취까지 공개되면서 대통령 자신이 공천개입 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법적으로 아무 문제 없다"는 강변이 대통령의 입장이었다. 비교 자체가 억지스러울지 모르겠으나, 후진 양성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무릅쓴 여 셰프와는 사뭇 다른 선택인 건 분명했다.

얼마 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독한 국회 시정연설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년 반,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고 했다. 국가와 민생을 최우선 순위에 둔 대통령의 충정만은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2년 반을 돌이켜보면 '내부 총질' 문자 사건부터 미국 방문 중 비속어 발언, 이태원 참사 대응, 도어스테핑 중단, MBC 출입기자 전용기 탑승 배제, 22대 국회 개원식 및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 등 어른의 품격을 찾아보기 어려운 속 좁은 행보들로 점철됐고, 그로 인해 민심 또한 그리 편하지 못했다.


결국 7일 떠밀리듯 부랴부랴 국민 앞에 나선 대통령. 성의 있는 사과와 해명을 바랐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특검 외에 방법이 없다는 주장도 거세다. 갈등과 혐오,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국민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주는 건 정치력과 국정 리더십을 갖춘 '참어른 대통령' 아닐까. 이미 늦었을지 모르겠지만, 임기를 절반이나 남긴 우리 대통령이 참어른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박서강 기획영상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