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원하는 건 동맹의 기여... 전략적 모호성 버리고 기회 잡아야"[전문가 인터뷰]

입력
2024.11.13 04:30
8면
⑤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
"트럼프 정부, 안보지원 따른 기여 요구할 것
우크라이나 전쟁 외면은 비논리적·비도덕적
주한미군 철수 막기 위한 핵무장 어려운 현실
북미 3차 정상회담, 당장 추진하기 쉽지 않아"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더 이상 전략적 모호성이 통하지 않는 시점이 왔다"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미국의 안보정책에 한국이 적극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사실상 승부가 갈린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보며 '트럼프 2기'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를 전망하는 자리에서다.

이 이사장은 "미국이 동맹국들을 지원한 만큼 거기에 상응하는 기여를 동맹국들이 해야 한다는 게 트럼프의 원칙"이라며 우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했다. 특히 그간 러시아와 중국과 관계를 의식해 소극적으로 대응해오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이나 대만해협 안정화에 관여하는 문제를 포함해 민감 현안을 놓고 미국과 보조를 맞춰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올 초부터 일찌감치 트럼프의 복귀 가능성을 점치며 정부가 폭넓게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세종연구소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윤석열 대통령은 7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에 대해 "북한군의 관여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지원방식을 바꿔 나가겠다"며 "만약 하게 되면 방어무기부터 우선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장 상황에 따라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셈이다.)

미중 갈등·고립주의 격해진다…"정부, 안보 기여 통한 입지 다지길"

-트럼프가 돌아왔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데.

"△우크라이나 △대만 △동맹 △ 통상 문제에서 일단 큰 변화가 예상된다. 하지만 정치인이 선거하는 과정에서 주장하는 정책이 모두 실제 정책으로 구현되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 개인의 생각이 바로 국가 정책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변화가 있어도 점진적이고 장기간에 걸쳐 이뤄질 것이다. 다만, 트럼프가 중시하는 원칙이 있다. 미국이 동맹국들에 지원하는 만큼의 상응하는 기여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단순히 트럼프만의 입장이 아니다. 민주당 정부도 변화와 속도의 강도는 다르지만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이 미국의 안보 지원을 계속 받기 위해서는 국방예산 증액을 통해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의 안보 지원에 상응하는 기여를 양적·질적으로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상대적 경제력과 군사력 쇠퇴를 고려하면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도래와 무관하게 장기적으로 불가피한 변화의 방향이다. 방위비분담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외안보 정책에 대한 '기여'는 무엇을 의미하나.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고 대만 문제에도 기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5, 6위 군사대국이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데도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에 유난히 소극적이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대만 문제의 예고편이자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성공한 형태로 종전이 이뤄지면 이에 고무된 중국이 대만을 침략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한 상황 전개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크라이나가 패전하지 않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러관계는 북러 동맹조약과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었다. 유사시 러시아의 북한 지원은 명확해졌다. 한국은 6·25전쟁 때 북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달려온 16개 참전국의 도움으로 생존했다. 지금도 미국의 안보지원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다. 그런 한국이 북한의 동맹국인 러시아의 눈치를 보느라 우크라이나 전쟁을 외면하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비도덕적이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종식, 러시아 승리 뜻하는 것 아냐"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러시아의 승리를 인정하겠다는 의미 아닌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즉각 중단을 장담하긴 했지만, 전쟁을 러시아의 승리로 종결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을 끊겠다고 말한 배경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와 휴전 협상에 나서도록 압박하기 위한 계산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5년, 10년 전쟁이 지속된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승리할 가능성은 없다. 결국 휴전이 현실적인데, 압박을 통해 휴전에 응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확대하도록 하기 위한 압박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1차적으로 위협받는 건 유럽 국가들인데,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 미국의 시각이다."

"트럼프의 김정은 사랑, 북미 직거래로 이어질 가능성 낮아…핵협상 어려워져"

-트럼프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우정을 과시해왔다. '코리아 패싱'에 더해 '핵 문제 동결'에 그칠 우려가 적지 않은데.

"트럼프가 선거 유세 때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할 가능성은 대단히 높아 보인다. 하지만, 양측 사이 타협 불가능한 괴리가 있어 긍정적 성과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작다. 트럼프도 김정은도 실패하는 정상회담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는 요인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주된 당사국이고, 이를 미국과 일본 모두 인정한다. 만일 한국 정부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명시적 또는 공개적으로 반대한다면 미국이 이해당사국인 한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강행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핵동결'은 북한과 미국 모두 합의하기 매우 어렵다. 북한은 이미 비핵화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핵동결은 북한이 영변 외 지역에 은닉된 모든 핵시설을 공개하고 국제사회의 검증을 받는 것이 필수적 선행조건이다. 북한은 비밀시설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이를 공개할 수도 없다. 핵동결은 현실적으로 합의가 불가능하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주한미군 철수 고려한 핵무장 요구, 현실성 떨어지는 전략"

-트럼프에게 외교는 '거래'다. 주한미군 철수 요구에 맞대응으로 우리도 핵 무장 또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정치를 하는 나라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하면 북한과 이란의 핵무장을 사실상 용인해야 하고, 이집트 터키 사우디 브라질 등 여러 나라의 핵무장 도미노가 불가피하다. 독자 핵무장의 이전 단계 조치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일각의 논리도 미국으로서는 수용이 불가능하다. 만일 한국이 진정 원자력 협정 개정을 원한다면 독자 핵무장을 절대 추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미국에게 심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이 거세질 텐데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일원으로서 전략적 명확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 전략적 경쟁과 이에 따른 대립관계는 계속 심화될 수밖에 없다.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바이든 정부도 '디리스킹'(위험 줄이기)을 통해 중국과의 대결을 심화시켜왔다. 이제는 미중 패권경쟁 구도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오히려 미중 대결이 없어지면 한국 산업이 성장할 공간이 사라진다. 반도체나 핸드폰 분야에서 한국이 아직까지 대중국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런 제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해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해 미중 사이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 경제적으로도 도움 안 되고, 미국의 배신감을 촉발해 주한미군이나 방위비분담금을 둘러싼 협상에서도 입지가 불리해질 수 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국내 대표적 북핵 전문가로 꼽힌다. 외교통상부 차관보와 주말레이시아 대사, 주이탈리아 대사를 지냈다. 청와대 남북 핵 협상 담당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정책부장, 북핵담당 대사를 거쳤다. 저서로는 '게임의 종말: 북핵 협상 20년의 허상과 진실'(2010),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2018) 등이 있다. 지난해부터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문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