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에 주문하면 내일 새벽 문 앞 배송.'
새벽배송, 로켓배송, 빠른 배송이 '유통 혁신'으로 칭송될 때 누군가는 밤새 먹거리를 배달해 준 사람들의 노동은 보호받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노동 연구로 국내외 주목을 받아 온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 최근 출간된 이 교수의 첫 단독 저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전통적 임금노동 범주에서 벗어난 비표준적 형태의 '불안정노동자'들을 조명한다. 새벽 배달 노동자는 그 대표 사례다.
책은 우선 새벽배송은 "퇴행적 혁신"이라고 분명히 해 둔다. "소비자의 편의성을 노동권보다 중시하는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 이 교수가 만난 새벽 배달 노동자들은 교대 근무가 아니라 고정적으로 야간에만 일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노동을 2군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사측은 전자감시 시스템을 통해 노동자의 동선과 업무량을 시시각각 확인하고, 배송 물량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병가를 내면 임금에서 불이익을 줬다.
배달노동자들은 누구보다 오래 일한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지난 9월 발표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쿠팡 택배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 시간은 64.6시간. 법정 근로 시간인 주당 40시간을 크게 웃돈다. 고정 임금이 아닌 배송 건당 수수료 형태로 지불받는 이들에게 '정규직 전환'은 당근이자 채찍이다. "기업은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불안과 모욕감을 노동자 사이의 경쟁 수단으로 이용"했다. 어떤 노동이 우리의 편의를 위해 희생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선명히 드러낸다.
새벽 배달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아픈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청소 노동자, 콜센터 직원, 해고 노동자, 청년 노동자, 필수 노동자,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 프리랜서 등. 이들을 꿰는 단어는 '불안정노동'이다. 그런데 사회안전망은 무력하기만 하다. 변화하는 일의 형태를 기존 제도가 담아내지 못하는 탓이다. 책은 한 플랫폼 기업 매니저가 배달 라이더를 노동자가 아닌 '고객'이라고 부른 일화를 전한다. 플랫폼 노동 아래서 노동자의 위상이 얼마나 모호해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전통적 노동 개념의 경계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일의 방식과 작업장의 범위, 정해진 노동 시간, 고용주와 노동자의 명확한 관계에서 벗어나"면서다. 이 교수는 불안정노동에서 두드러진 이러한 현상을 '액화노동(melting labour)'으로 개념화했다. 다수 해외 학회에서 발표돼 눈길을 끌었던 '액화노동' 개념은 지난해 영국에서 먼저 '불안정노동의 다양성'이라는 제목의 책에 담겨 소개됐다. 이번에는 국내판 단행본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선보인다.
2020~2022년 국무총리실 직속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초대 부위원장을 지낸 이 교수는 불안정노동의 주요 유입층이 청년 세대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이른바 MZ세대론으로 '청년'을 단일 범주로 묶을 경우 청년 노동자의 진짜 현실이 은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연구 결과 청년들은 '매우 불안정한 집단'과 '전혀 불안정하지 않은 집단'으로 양극화돼 있었다. "같은 청년이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안전망이 없는 가운데 사적 자원이 없는 대다수 청년들은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훨씬 컸다.
이 교수는 "불안정노동 연구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점과 이론이, 이 사회 노동의 '실재'에 다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불안정노동을 관통하는 '액화노동'의 렌즈를 통해 삶과 일터 풍경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는 게 이 책의 미덕. 불안정노동자들은 기존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에다 완전히 새로운 문제까지 복합적으로 갖고 있었다.
이 교수의 질문은 계속됐다. 기술 발전에 따른 플랫폼 경제 확산이라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자들의 권리는 발맞춰 신장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일할수록 불안정해지는가. 사회안전망은 왜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이토록 무력한가. 책에 실마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