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비싼 가격엔 못 산다"... 미국 바이어의 싸늘한 말에 잠 못 이루는 중소기업
알루미늄 포장지를 미국에 수출하는 중소기업 '일진알텍'의 현용길 대표는 10년 동안 관계를 이어온 미국 바이어에게 이 말을 듣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진알텍에 미국 수출 물량은 연간 매출액의 20%(100억 원)를 차지하는 캐시카우다. 그런데 오는 3월 12일부터 미국 정부가 외국산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내게 하면서 당장 올해부터 미국 매출이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국 시장을 놓치면 다시 진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 대표는 "제 살 깎아 먹기로 버텨야 한다"고 한탄했다. 관세 25%만큼 가격이 오를 텐데 원가를 최대 10% 낮춰 손실을 보더라도 수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에 미국에 수출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액을 채울 수 있는 시장을 3월이 되기 전에 발굴해야 경영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게 하루이틀 만에 될 리 없다. 현 대표는 "유럽, 아프리카 등 새로운 시장 진출 가능성을 찾아보고 있지만 10년 동안 다져온 미국 바이어와의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어를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상거래를 제안하는데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뒷밤침돼 있지 않아 대금을 받기도 어려워 보인다고 한다. 결국 개별 중소기업이 트럼프 관세 부과를 오롯이 버텨내기엔 체력이 부족하고 정부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게 현 대표의 판단이다. 그는 "트럼프 관세라는 강한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자금 같은 우산이 필요하다"며 "미국 수출을 대체하는 시장을 발굴했을 때 무역보험 등 제도로도 수출 중소기업을 뒷받침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에 상당한 타격이 예상돼 한국 중소기업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코앞으로 위기가 다가온 건 알루미늄, 철강 중소기업들이지만 국가 단위 관세 부과가 이어지면 한국 중소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됐다. 실제 산업연구원의 '트럼프 관세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 결과를 보면, 멕시코·캐나다에 25%, 중국 등 국가에 10%를 부과하는 흐름이 이어질 때 한국 중소기업의 대미 수출 감소분은 1조2,000억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싼 미국산 제품과의 경쟁으로 수출 시장 규모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미국 외 국가의 중소기업 제품과의 경쟁에서도 한국 수출 중소기업 제품이 먼저 선택받기도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 산업연구원은 "관세가 일괄 부과돼 외국산 제품들 사이에는 가격 차이가 없다"며 "한국 수출기업 제품이 다른 외국산 제품을 대체하는 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연구원은 중소기업 수출이 1조2,000억 원 줄면 전기전자 등 여러 업종의 생산 규모가 1조9,000억 원 감소한다는 점도 짚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와 관련해 '트럼프 2기 행정부 대응, 중소기업 지원 간담회'를 12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알루미늄, 철강 외 업종에서도 다가올 위기에 대한 걱정이 터져나왔다. 멕시코에 공장을 설립해 디스플레이용 플라스틱 패널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아이델' 이재식 대표는 "멕시코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삼성전자 수주가 뚝 떨어질 것으로 보이고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중국산 원료를 사용해 항공우주용 특수 물질을 생산해 미국 위성 업체에 납품하는 '동인화학'은 "미국이 중국산 원료 사용을 금지하고 관세를 내게 하면 수출에 막대한 어려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기부는 이에 전국 13개 지방청에 신고센터를 설치해 수출 중소기업들의 피해를 접수하고 상담을 진행한다. 수출 중소기업에 긴급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고 미국 외 아세안 등 신흥시장 진출을 위한 지원 체계도 마련한다. 오 장관은 "이런 내용이 담긴 '중소·벤처기업 수출 지원 방안'을 2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며 "신보호무역주의가 우리 중소기업에 도전적 상황인 동시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