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표심'에 금투세 내준 이재명, '주주 충실' 상법 개정으로 내부 반발 만회하나

입력
2024.11.05 18:00
민주당 TF 구성, 정기국회 내 개정 추진
'지배주주 견제' 화두로 진보진영 달래기
여당은 '논리적 모순' 반대, 정부는 고심 중

정부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동의한 더불어민주당이 반대급부로 '증시 선진화'를 위한 상법 개정에 집중하고 있다. 이사회가 개별주주 이익까지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 함으로써, 최대 주주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기존의 경영 판단을 견제한다는 취지다. 이를 과도한 '재벌개혁'의 연장선으로 판단한 재계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하지만, 금투세 폐지로 '부자 감세 반대' 기조에 역행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입장에서는 당 내부는 물론 진보 진영 전체를 달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증시 선진화 첫 단추"… '코리아 부스트업' 속도

이정문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보장하고 증시 선진화 정책에 앞장서는 첫 단추로 상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 내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오기형 의원을 단장으로 ‘개인투자보호 및 기업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상법 개정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앞서 민주당은 정책위원회 차원에서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코리아 부스트업 프로젝트'에서 상법 개정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추진 중인 개정안의 핵심은 상법 382조 3항의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부분이다. 기존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돼 있는 부분을 '회사와 주주의 이익'으로 고쳐 개별 주주들의 이익을 명문화시킨다는 계획이다. 22대 국회 들어 정준호 의원을 시작으로 강훈식 박주민 의원 등이 관련법을 발의한 상태다. 여기에 TF 소속인 오기형 김남근 의원은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 내용이 포함된 법안도 발의해 놓았다.

'지배주주' 대신 '소액주주'에 손… 재벌개혁 연장선

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현실화할 경우, '알맹이를 빼 먹는' 지배주주 때문에 장기 투자에 부담을 느끼던 개인 투자자들에게 희소식이 된다. 금투세 폐지를 전격 선언한 이 대표도 전날 "대주주들이 지배권을 남용해 물적 분할이니, 전환사채니 발행해서 알맹이를 쏙 다 빼먹는다"고 비판했는데 이를 통해 진보진영의 핵심 의제인 재벌개혁도 이어간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실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나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쪼개기 상장’, 최근 논란이 된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 등의 경우에서 대기업이 지배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한다는 비판이 계속 터져 나왔다.

이는 당내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도 된다. 당내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당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훼손되고, 자칫 소탐대실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금투세 폐지를 비판했다. 다만 이들은 "금투세 폐지 동의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이 선택에 실망하는 많은 분들을 납득시킬 진정성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며 "상법 개정을 통해 재벌 계열사 합병과 분할 과정에서 드러난 불공정 행위를 개선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與 "논리적 모순"… 입법 과정서 충돌 불가피

다만 법안 처리 과정에서 여당은 물론 재계의 반발까지 넘어서야 한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주주들의 이익을 위한 충실 의무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도 "소송이 늘어나고 주주 간 갈등이 증폭돼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의식한 민주당에서는 절충안도 제기된다.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명시하는 대신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을, 천준호 의원은 ‘특정 주주의 이익이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별도로 담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대선 당시 '소액주주 보호'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외국 투기자본의 표적 가능성 등을 명분으로 반대하는 재계의 반발을 의식해 아직 결정을 미루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날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과 관련해 "기업의 가치를 높여서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면서도 "최선의 방법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상법, 자본시장법 개정과 관련해 어느 법을 어떻게 개정할지에 대한 여러 안을 놓고 논의 중"이라고 답변했다. 상법에 관련 조항을 담으면 모든 기업에 적용되지만, 상장회사를 규율하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면 그 대상이 축소된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박세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