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안 치고 당당한 어른 될래요"... 보호소년들은 '담당 판사님' 이름 외쳤다

입력
2024.11.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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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보호기관 청소년 문화제 현장]
범죄 이후 기관보호처분 받은 청소년들
함께 모여 음악·연극 '협업'의 가치 배워
"평범하게 살며 좋은 부모 되겠다" 다짐


"까불길래 한주먹 했어요. 안 될 거 없잖아요."

"부모님은?"

"부모 없는데요."

친구와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한 열다섯 살 소년. 경찰서에 끌려가서도 기세가 죽지 않던 소년은 소년분류심사원을 거쳐 6호 처분(소년보호시설 위탁)을 받는다. 삐딱했던 소년은 6개월의 보호기간이 끝나는 날, 비로소 "사회에 나가려고 하니 막막하지만 이제 사고 안 치고 싶다"고 아빠에게 털어놓는다. 심사원에선 "소년원에 보내라"고 언성을 높였던 아빠도 그제서야 "미안했다, 앞으로 잘해보자" 따뜻한 말을 건넨다.

5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살레시오 보호소년들이 공연한 연극 '우리들은 열다섯' 중 한 장면이다. 소년과 아빠가 진한 포옹을 나누는 순간 300여 명의 보호소년들이 "와" 환호성을 보냈다. 바로 이어지는 화면은 무대에 섰던 보호소년들의 진짜 '꿈'을 담은 영상.

"사고 안 치고 평범하게 살고 싶고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재범하지 않고 어른이 돼서 지인에게 커피 한잔 사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장내가 숙연해지며 박수가 쏟아졌다.

보호소년들의 공연이 오른 무대는 소년보호기관 청소년 문화제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이 문화제는 6호 처분 기관인 마자렐로 센터, 돈보스코 오라토리오, 나사로 청소년의 집 등에 수용된 청소년들이 꾸며가는 축제다.

이름은 '축제'지만 치어리딩, 밴드 연주, 합창 등 협동이 필요한 무대를 준비하는 데 더 초점을 맞췄다. 밴드 공연을 준비한 효광원 지도교사는 "에너지가 너무 넘치는 친구들이 있는데, 기타를 가르쳤더니 서너 시간씩 연습을 하더라"면서 "나중엔 성격도 좋아지고 가능성을 봤다"고 전했다. 자신감과 성취감을 갖도록 하려는 목적도 있다. 한 보호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하나의 무대를 완성하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교화를 다짐하는 메시지도 담겼다. 돈보스코 오라토리오 보호소년들은 '얼룩 같은 어제를 치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란 가사가 담긴 뮤지컬 '빨래'의 수록곡을 불렀고, 효광원 보호소년들도 밴드 공연 마지막에 '후회 없는 삶을 살자'는 피켓을 들었다.

문화제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최호식 서울가정법원장, 이우철 인천가정법원장 등 100여 명의 법원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휴식시간엔 보호소년들이 소년사건 담당 판사의 이름을 연호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자신들에게 보호 처분을 내린 판사를 기억하고 반기는 것으로, 판사와 아이들 사이 일종의 신뢰관계(라포)가 형성되는 것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천 처장은 "오늘 무대에서 느낄 박수와 환호는 땀과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면서 "수많은 도전 속에서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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