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붕' 티베트, 그곳에도 구석기 인류가 살고 있었다

입력
2024.11.11 04:30
24면

편집자주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48>구석기인의 행복의 땅, '피루오 유적'

인류가 마지막으로 개척한 오지는 이번 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의 지붕', 티베트로 여겨졌다. 하늘에 가깝다는 생각에 티베트는 인간이 동경하는 신비의 땅이었다. 과학자는 인류 발상지로 상상하기도 하고, 신비주의자는 이상향으로도 생각했다. 당초 생태학자들은 선사시대 고인류들은 살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최근 조사된 피루오 유적은 10만 년이 훌쩍 넘어섰다. 10만 년 전 고인류는 에베레스트를 최초 등정한 힐러리경만큼 도전 정신이 넘쳤거나, 오늘날 티베트 사람처럼 이상향을 찾으려 했던 건 아닐까. 티베트에 첫 도착한 사람들은 아직도 미궁인 유라시아 인류 확산의 암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누구였고, 언제 왜 그곳에 갔을까.

티베트, 왜 샹그릴라인가?

샹그릴라(Shangri-La). 티베트 쿤룬산맥에 있다는 상상의 도시 샴발라(Shambala)에서 유래됐다. 티베트어로 '산 넘어 행복의 땅' 또는 '내 마음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전쟁도 없고 죽지도 않고 지혜가 가득한 곳이다. 티베트는 지구의 지붕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하늘과 맞닿은 곳이니 그런 상상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인간은 꿈을 꾸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당초 상상 속에 있던 샹그릴라가 이제는 존재한다. 중국 위난성 쿤밍에서 서쪽 산맥을 넘어 남북으로 종주하는 산맥 사이로 북쪽 차마고도를 따라가면 역사도시 리샹이 나오는데, 그곳을 더 지나면 샹그릴라라고 불리는 시가 있다.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J. Hilton)이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상상했던 도시, 샹그릴라를 비정하여 1997년 중국 정부가 동티베트 작은 도시였던 중뎬의 이름을 바꿨다. 게다가 쓰촨성에서도 또 하나의 샹그릴라 진(津)이 조성됐다. 중국의 '티베트 세일즈'인데, 그 바닥에는 이상향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

티베트고원은 평균 해발고도가 4,500m에 이른다. 산소가 해수면보다 40% 정도 부족하다. 저산소뿐 아니라 자외선이 강하고, 기온은 춥기 때문에 서식하는 생물이 턱없이 적다. 사람도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티베트 사람에게 '이곳이 낙원'이라는 신념이 없었다면 억센 삶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샹그릴라'도 티베트 불교의 교리처럼 '마음이 극락'이라는 믿음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중국이 샹그릴라로 이름 붙인 곳을 지나는 차마고도가 연결되는 곳에 피루오(Piluo) 구석기 유적이 있다.


세계 지붕 위의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청두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착륙한 다칭공항은 해발 4,400m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공항이라고 자랑한다. 비행기 속에서부터 귀가 먹먹해서 애를 먹었다. 막상 유적이 있는 곳은 고도가 3,700m 정도이니 한참을 내려간다. 곳곳에 조림된 나무들이 보이는 벌거벗은 붉은빛의 산하이지만, 빙하시대에는 분명 빙하로 뒤덮였을 것이다. 빙하가 사라진, 산비탈 자락이 강단구처럼 남아 있는 평평한 대지에 발굴 현장이 있다. 발굴유구를 보존하기 위한 가건물을 중심으로 석기가 수습된 면적은 30만 평이 넘는다.

낮은 산의 비탈면을 따라 퇴적된 토층이 침식되면서 드러난 주먹도끼를 비롯한 석기들이 채집된 곳이다. 발굴현장에도 석기들이 남아 있고 동토(凍土)였던 흔적이 토층문양으로 남아 있었다. 주먹도끼들이 수습되었는데, 중국 학자는 '이 주먹도끼는 진정한 아슐리안'이라고 말한다. 이 지역 석재들의 얇게 쪼개지는 특성 탓에 주먹도끼도 얇고 날카롭다. 석재만 다를 뿐 가공방식은 우리나라 전곡유적 등의 주먹도끼와 다를 바 없고 중국 산시지방의 것과도 기술적으로 유사하다. 같은 석기문화라도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 나는 것이 보통이다. 전곡 출토 주먹도끼를 말하는 '전곡리안(Chogoknian)'의 티베트 변형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첫 발굴 때는 13만 년 전, 즉 마지막 간빙기에 구석기인이 도착했을 것으로 보았다. 그 이전 빙하기에 이곳에서 사람이 살 수는 없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대 연대가 20만 년 전까지 올라간다. 현생 인류가 동아시아에 출현하기 훨씬 이전 티베트 지역에 구석기 인류가 도착했던 셈이다.

빙하기 티베트를 개척한 '초능력' 인류는 누구인가?

지금은 단 하나의 인류종, 호모 사피엔스만 살고 있지만 인류진화사 연구에 따르면 2만 년 전만 해도 여러 인류종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20만 년 전, 티베트에는 어느 인류종이 살았을까.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대체로 40만 년 전 이후에 아시아에는 3가지 다른 갈래의 인류종이 진화하고 있었다. 데니소바인,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현생인류 조상인 인류종이다.

16만 년 전으로 알려진 간쑤성 티베트고원 샤허동굴의 고인류 턱뼈에 대한 유전자 분석에서는 데니소바인이 이 지역의 최초 인류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알타이에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데니소바인은 아주 작은 뼛조각에서 유전자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그 모습에 대해서 불확실한 점이 많다. 동남아시아 뉴기니섬에서 유전자 빈도가 높고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널리 분포하고 있는 반면, 유럽 지역에서는 희미하게 나타나고 아프리카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고인류학자들은 중국의 중부 홍적세 후반(35만~12만 년 전)에 속하는 고인류화석들 중에 데니소바인의 것이 다수 있다고 주장한다. 유전자 빈도나 화석 분포를 보면 중국 남부나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출현하여 북으로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 무리가 기후가 온난한 시기에 티베트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 티베트 사람의 유전자 분석에서도 데니소바인에게서 물려받은 저산소증에 강한 유전자(EPASI 유전자)가 나온다.

그러나 주먹도끼를 쓴 인류는 현생 인류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의 존재다. 시대를 달리하여 지속되는 구석기 유적의 존재는 분명 이들 역시 티베트의 고원 환경에 적응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 살기가 힘든 티베트로 갔을까?

인구 밀도가 극히 낮았을 중부 홍적세에, 피루오 구석인들이 열악한 티베트고원으로 진출한 이유는 뭘까. 인류 이동은 언제나 분명 이유가 있다. 이는 인류 진화 수수께끼의 하나이고 고고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피루오 유적으로 가는 차마고도는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가는 좁은 길이 많다. 티베트 사람들은 '새와 쥐의 길(鳥路鼠道)'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어려운 길을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살기 힘든 곳의 하나인 고원으로 진출하는 건, 어려움을 알고도 고생하는 현대 고산지 등반 트레킹족과는 달리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 지역 원주민 대부분이 궁극적으로 난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구석기 시대에도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사정 때문에 벌어졌을 수 있다.

티베트로 가는 차마고도가 시작되는 동쪽 지역은 쓰촨성과 위난성이다. 모두 중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샹그릴라’ 같은 곳이다. 기후 좋고 물산이 풍부하고 전쟁 위협으로부터 먼 곳이다. 두 지역 모두 차를 재배하여 티베트와 교역을 하는 곳이고, 야크의 버터가 들어가는 수유차는 티베트인들에게 비타민을 제공한다. 두 지역 모두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쓰촨지역의 최근 발견된 타오후아허 유적에서는 멋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쏟아져 나왔다.

주먹도끼 주인공들은 좋은 곳을 버리고 왜 티베트로 갔을까. 춥고, 숨쉬기도 힘들고 먹거리 장만도 힘들 텐데… 이들도 샹그릴라를 찾아간 것일까. 아시아의 급수탑이라고 불리는 티베트에서 중국의 황해로 흘러오는 장강 상류 진사강이나 중국 위난성을 지나 베트남으로 흐르는 란창(메콩)강 물길이 그들을 인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티베트를 찾아간 이유는 아직 고고학자의 수수께끼이다.

티베트 피루오 유적, 인간 승리의 현장

인류의 달 탐사는 반세기도 지났지만, 아직 달 표면 위의 암스트롱 발자국은 지구인 모두의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다. 수십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티베트고원에 간 사람들에게는 그곳이 오늘 우리가 보는 ‘달나라’였을 수 있다. 체질적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머릿속에 든 지혜와 불굴의 의지가 지구의 오지를 정복하게 만든 것이다. 티베트 피루오 유적,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들고서 미지의 세계를 정복한 머나먼 선조가 마치 우리들에게 "우리 인류는, 우주 어디든 갈 수 있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