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 대선 당일까지 존재감 과시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 하더니,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도발을 이어가며 한반도에 '실체적 위협'을 각인시켰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은 여기에 '전쟁'을 들먹이며 핵무력 강화의 명분까지 내세웠다.
5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전 7시 30분쯤 황해북도 사리원 일대에서 SRBM 수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지난달 31일 평양 일대에서 신형 ICBM '화성-19'형을 시험발사한 지 닷새 만이며, 남한을 겨냥한 SRBM 발사는 9월 18일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4.5톤급 재래식 탄두를 탑재한 '화성포-11다-4.5' 이후 48일 만이다. 합참은 "북한의 미사일은 약 400㎞를 비행했으며 세부 제원은 종합적 분석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비행거리상 이번 SRBM은 KN-25로 불리는 600㎜ 초대형 방사포로 추정된다.
주목할 지점은 발사 장소다. 통상의 평양 인근이 아니라 남쪽으로 60㎞가량 떨어진 사리원에서 SRBM을 쏜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사리원에서 SRBM을 쏘면 한반도 남해안까지 거의 다 사정권에 들어간다"며 "이동식 발사대(TEL)를 이용해 기습적으로 발사 지점을 옮겨가며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SRBM을 쏠 수 있다는 점을 부각, 대남 위협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잇따라 탄도미사일 도발에 나선 의도를 두고도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북한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지난 3일 미국 전략폭격기 B-1B를 포함한 한미일 공중 연합훈련에 대한 반발 차원이다. 김 부부장이 이 훈련에 대한 비난 담화를 공개한 직후 SRBM을 쐈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이번 연합훈련을 "적들의 가장 위험한 침략적 본태의 명백한 행동적 설명"이자 "우리가 실행하는 핵무력 강화 노선의 정당성을 입증해주는 완벽한 증명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선반도에서 힘의 균형 파괴가 곧 전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자위적 핵억제 강화 노선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면은 좀 더 복잡하다. 미국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러시아 파병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전환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 대선 이후 들어설 차기 행정부에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선 후보 당선에 유리하도록 한반도 긴장 상황을 부각시키고, 바이든 행정부와 차별화된 대북 정책을 유도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국제사회의 러시아 파병 비판 이슈를 핵무력 강화 이슈로 전환시키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 당국은 특히 북한의 다음 스텝, 핵 고도화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의 핵물질 증산 관련 활동들은 1년 내내 증가하고 있다"며 "풍계리 핵실험장의 3번 갱도는 언제든 핵실험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한미 군 정보당국은 북한이 만약 7차 핵실험을 한다면 600㎜ 방사포에 탑재할 수 있는 '화산-31' 같은 소형 전술핵탄두를 실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부연했다.
군 당국은 북한의 다양한 추가 도발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 우주발사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서북도서 및 접적 지역에 대한 총·포격, 무인기 침투,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이다. 군은 이번 주 중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지대공 유도탄, 지대지 미사일 등 자체 요격 체계 훈련과 함께 한미 연합훈련도 실시할 계획이다.
국방부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상당수가 전선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1만 명 이상의 북한군이 지금 러시아에 가 있고, 그중 상당수가 쿠르스크를 포함한 전선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이 예상한 '연말까지 1만2,000명' 수준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현지 매체와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첫 북한 병력이 쿠르스크에서 이미 공격받았다"고 전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크렘린궁의 공식 발표와 달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만나 1분간 손을 맞잡고 독대를 하는 특별 대우를 받은 것 역시 북한군의 전선 투입과 관련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